참살이의꿈

잘 난 척 하더니

샌. 2007. 11. 7. 09:44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는 데서 내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세상의 속물성을 비난했고, 그런 사람들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타인들에게 나의 그런 내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는 잘 난 척 한다는 핀잔을 자주 들었다.

내 세계를 추구할 수록 갈등은 깊어졌다. 유아독존 식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옳은 것이 그른 것과 어울리지 못할 때 그 옳음은 옳음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선이 악을 감싸안지 못할 때 선은 결코 선이 될 수 없음을 배웠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옳은 것은 그른 것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선과 악 또한 마찬가지다. 옳은 것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구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상의 속물성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든 세상의 보조에 내 발걸음을 맞출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성을 바라보는 내 눈이 변한 것은 확실하다. 더럽다고 피했던 추함에 대해이젠 조금씩 이해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엇을 추하다고 느끼는 것 조차 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을 이젠 따스히 껴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스해진 걸 실감한다. 내가 변함으로써 주위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겉모습이 아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모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들 사이의 공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세상과 화해하는 중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예전에는 엄청 잘 난 척 하더니..." 라면서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반기는 표정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도 비슷한 어감의 말을 듣는다. 돌아온 탕자 취급 받는 것이 거북하지만 우호적인 호감의 분위기는 참 좋다. 사람살이의기본은좋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명제에 몰두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서 소홀히 했다. 아니 의식적으로 단절코자 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과 이웃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안다.

가을이 참 좋다. 나름대로는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던 지난 가을들이 길었다. 그러나 올 가을은 우울을 감상해 볼 여유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무엇이 좋았고 나빴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난 가을들의 내홍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함이 주어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이제 나를 어떤 틀 속에 가두며 구별 짓고 잘 난 척 하지 않으리라. 텅 빈 마음을 활짝 열고 저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맘껏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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