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노인네 사이에 갑자기 육탄전이 벌어졌다.
내가 탔을 때는 경노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사이에 나이가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는 험한 말이 오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일흔 몇이라고 했고, 더 젊게 보이는 다른 사람은 그보다 몇 살을 더 보태 형님 행세를 했다. 서로 반말과 쌍욕이 오가더니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안경이 깨어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화가 생길 뻔 했다.
들어보니 소동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발이 옆 사람을 건드린 것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예의 없는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이번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날이 선 말들이 오갔을 것이고, 결국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 어린 아이가 된다더니 꼭 철없는 아이들 같은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내리고 난 뒤 일흔이라는 연륜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순(耳順)에 이르면 무슨 말을 들어도 화 내거나 흔들림이 없다고 한다. 일흔은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즉 하고픈 일을 마음대로 해도 우주법칙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는 때다. 지하철 안의 노인들은 하고픈 일을 마음대로 한 것만 공자님 말씀을 따른 것 같다.
포도는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숙성되어 질 좋은 포도주가 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성숙되어 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떤 사람은 더 추하게 변하기도 한다. 늙은 탐욕과 고집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없다.
지하철의 두 노인을 보면서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인생의 지혜에까지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여유와 따스함은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노년의 품위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 노력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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