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내 마음의 땅 끝

샌. 2007. 9. 10. 12:3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예수의 메시지만큼 기독교인들을 선교 열정으로 가득하게 하는 구절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린 마지막 말로서, 기독교인들에는 거의 절대적인 명령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내 대학교 때 동기 하나도 이미 30년 전에 아프리카로 선교를 위해 떠났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종교적 열정을 가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한 인질 사태에서 드러났듯 특히 우리나라의 선교 열정은·세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불타는 열정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마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동료 기독교인과 얘기는 나누었는데, 그는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마다 부자가 되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인이 많은 마을이 소득이 높고 개명이 빨리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무슨 마을을 가리키며 그 시골 마을에서 박사가 백 몇 십 명이 나왔다고 자료까지 제시했다. 이런 기준으로 인생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치한 기독교인들이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부자 되고 출세하는 것을 하늘이 주는 복으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종교는 이기적인 복 받기 운동에 다름 아니다. 그가 가난한 이웃이나 불의의 전쟁, 또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고민 등을 얘기하는 것은 몇 년간 같이 지내면서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예수의 산상수훈이나 도덕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는 소극적인 기독교인들이 선교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태도는 나에게는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진다. 진지하고 성숙된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종교적 믿음은 흔히 독선으로 표출되기 쉽다. 특히 ‘절대’라는 말을 좋아하는 종교일수록 그런 경향은 심하다. 어떤 점에서 왕성한 외적 확장욕은 내적 미성숙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에는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내적 여유가 없다. 그런 선교는 일방적인 문화 침략에 다름 아니다. 초기 제국주의 시대의 공격적 선교 방식을 지금 우리가 다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땅 끝’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나는 이상한 상상에 사로잡힌다. 예수의 우주관은 과연 어떠했을까 라는 의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땅 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편평한 지구와 땅 끝이 상식적인 개념이었을 것이다. 예수는 과연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거대한 우주의 규모를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런 지식의 일단이나마 설명해 주었을까?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질문은 신성모독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성경의 기록으로는 예수는 지리적, 과학적 관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분은 유대 땅을 벗어나지도 않았고,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 흥미도 가지지 않은 듯 하다. 당시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에 대해서조차 별다른 언급이 없고,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낡은 종교의 개혁과 정신혁명을 최우선시한 철저한 유대인이었다. 성경을 읽다보면 외부세계에 대한 이런 예수의 침묵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그런 예수가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했다. 이것도 실제 예수의 말이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여기서 ‘땅 끝’은 지리적 의미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땅 끝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달을 정복하고 태양계 밖으로 우주선이 날아가는 시대지만 아직도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의식세계가 그러할진대 무의식,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이것은 무언가를 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깨달음과 각성의 영적인 분야다. 예수가 말한 ‘땅 끝까지 이르라’는 명령은 우리 마음의 땅 끝, 즉 마음의 근본자리에까지 이르라는 뜻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다. 그것은 철두철미 예수의 정신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의 정신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외적인 확장에 매달리기보다는 내적인 성숙과 깊이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본다. 그 연후에 선교는 선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유치한 기독교를 벗어나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낮고 겸손한 우주적 기독교로 거듭날 것을 기대해 본다. 그것이 진정한 ‘땅 끝’에 이르는 길임을 믿는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든 오늘은 행복입니다  (1) 2007.09.29
가치관의 반전  (2) 2007.09.19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0) 2007.09.04
집이 뭐길래  (0) 2007.08.24
불만에 찬 물고기  (0) 2007.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