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초가을의 물향기수목원

샌. 2007. 10. 4. 09:57

기상청에서 보도자료로 내놓은 지난 9월의 기후 특성을 보면 또 다시 각종 기록을 갱신했다. 9월 강수량은 412mm로 평년(150mm)보다 2.8배나 비가 많이 내려 1973년 이후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고, 강수일수도 17일로 최고를, 월평균 일교차는 7.1도로 최소를, 월 평균일조시간은 98시간으로 평년(184시간)에 비해 무려 86시간이나 줄어들어 최소를 기록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 변화를 우리가 지금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사계절의 구분이 아니라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야할 지도 모른다. 7, 8, 9월은 우기가 되는 셈이다.

 



K 형과 같이 오산에 있는 물향기수목원을 찾은 날도 이슬비가 내리더니 하루 내내 하늘이 잔뜩 흐렸다. 감각적으로는 한 달여 이상 이런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그동안이틀 정도청명한 가을 날씨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연일 우중충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수목원의 호숫가 나무들에서는 가을 기운이 묻어나고 있었다.

 

물향기수목원은 작년 봄에 개원했는데 16개의 주제원에 170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경기도립 식물원이다. 식물들이 알차게 배치되어 있어 갈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며 즐긴다. 특히 천안까지 가는 전철을 이용하면 서울에서도 쉽게 갈 수가 있다. 나는 작년 여름에 가보고 이번이 두 번째 걸음이었다. 그동안 굶주렸던 꽃에 대한 갈증을 시원히 해소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습지식물을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 생물을 전공한 K 형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습지식물은 사실 수목원이 아니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습지식물은 통발, 물질경이, 물달개비, 택사, 자라풀, 보풀, 벗풀 등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전에는 그냥 흘깃 지나친 것들이 이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꽃인 구절초다. 구절초와 쑥부쟁이, 벌개미취 등을 구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나 그래도 구절초만은 꽃이 풍기는 느낌으로 알아낼 수 있다. 그런 느낌을 나는 사랑한다.

 



이것이 벌개미취다. 요사이는 인공적으로 많이 심어서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호수에서 쇠물닭을 만났다. 여름 철새인데 아직도 여기에 남아 있다. 설마가야 할길을 잊는 것은 아니겠지.

 



언제 봐도 보기 좋은 부들. 이 부들 속은 쇠물닭의 보금자리가 된다. 애기부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다.

 



숲 가운데에 미국쑥부쟁이 무리가 환하게 피어 있다. '미국'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거부감이 일지만, 그래도 이 꽃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닷가가 아닌 이곳에서 만난 해국은 왠지 부자연스러웠다. 저 꽃도 아마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를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을은 역시 억새일까. 별 색깔 없는 저 모습이 가을의 제 모습일지 모른다. 억새에서는 흑백사진의 무게가 느껴진다.

 



작은 연못 한 켠에 철 지난 노랑어리연꽃도 한 송이 피어 있었다.

 



늦쑥부쟁이라고 한다. 쑥부쟁이에도여러 종류가 있다. 이런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노란 수술이 예쁜 꽃.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산림전시관 안에서 아이들이 꽃의 영상을 보며 놀고 있다. 천장에서 비친 빛이 보름달을 만들고 그 안에꽃과 나비가 어울린다. 아이들도 나비와 더불어 춤춘다.

 



느티나무 고사목. 원래 남양주에 있었던 수령 500년 된 고목이었으나 죽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미이라가 된 것이다. 비록 형해만 남아있지만 500년 세월의 위용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오래된 나무는 죽은 몸조차 위풍당당하다.

 

K 형과 정치와종교 얘기도 나누었는데, 형은 문국현 강연회에 가서 받은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분의 진솔한 인간적인 면모에 반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또한 형은한국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독실한 신자로 보이는데, 내면으로는 갈등을 겪고 있음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 성숙하고 변화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데 서로가 동감을 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꽃과 나무를 보며 지낸 행복한 하루였다. 수목원을 나서며 우리 안에 내재된 여성성과 식물성이야말로 지금의 천민 자본주의 시대를 구원할 희망으로 나에게는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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