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어느 고을에 그림을 잘 그리는 화공이 있었다. 이 화공의 부인은 빼어난 미인이었는데 이웃 마을에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욕심 많은 고을 원님은 억울한 누명을 씌워 화공 부인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갖은 수단으로유혹했으나 부인은 모든 걸 뿌리치고 오직 남편을 그리며 눈물로 날을 지샜다. 부인을 빼앗긴 화공은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할 길이 없어 미쳐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화공은 감옥 아래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줄기 덩굴꽃이 피어나 부인이 갇혀있는 창가에까지 다다랐다.원한에 사무쳐 죽은 화공의 넋이 꽃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나팔꽃에 숨어있는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고, 슬픈 사연도 많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에 자신들의 억울하고 슬픈 사연을 투사해서 전설을 만들었다. 꽃에 얽힌 전설에는 이렇게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 나팔꽃의 꽃말은 '허무한 사랑'이라는데, 이 전설을 떠올리면 목숨까지 바치는 애절한 그리움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팔꽃은 영어로 'Morning Glory(아침의 영광)'이라고 하듯 해가 뜨고 좀 있으면 잎을 닫아 버린다. 새벽 일찍 핀 꽃은 햇볕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시들기 시작해서 오후에는 완전히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꽃은 한 번 시들어 버리면 다시 피지 않고 떨어진다. 그러나 이른 아침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나팔꽃은 그렇게 청아할 수가 없다. 생긴 모양이 옛날 유성기의 소리통과 같아 나팔꽃이라는 이름이 꽃의 모습과잘 어울린다.
옛 초등학교 모교를 찾았다가 운동장 한 켠에 피어있는 나팔꽃을 만났다. 그때의 건물이나나무들은 다 사라지고 없어 왠지 쓸쓸했는데 이 나팔꽃 한 송이가 따스히 날 맞아주었다. 가만히 꽃을 들여다 보노라니 보고 싶은 옛 동무들 얼굴들이 꽃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내 첫사랑의 그녀도 살포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