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매화

샌. 2007. 3. 30. 14:49



우리 조상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은 꽃은 매화일 것이다. 특히 선비들이 매화를 숭상하고 귀하게 여겼다.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맨 먼저 피어나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선비정신의 표상이 되어 정원에 심어 완상하였으며 시나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매화는 난(蘭), 국(菊), 죽(竹)과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로, 연꽃을 보태 오우(五友)로 불리기도 한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사천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 24년(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는 기록이라고 한다. 일본에는 백제 사람 왕인(王仁)이 매화를 약용으로 일본에 가져갔다는 설이 있다. 매화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지 전에 피는 것은 조매(早梅)라 하고 봄이 오기 전 눈이 내릴 때 피는 것은 설중매(雪中梅) 또는 한매(寒梅)라고 한다. 또 가지가 구부러지고 푸른 이끼가 끼고 비늘 같은 껍질이 생겨 파리하게 보이는 것을 고매(古梅)라 하여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강매(江梅)는 강변에서 자라는 매화를 일컫는 이름이다. 또한 붉은 꽃이 피는 홍매(紅梅)도 있다.


매화가 상징하는 것 중에 으뜸은 역시 고고한 선비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매화나무는 돈 많은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다. 매화나무는 은둔이나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이고, 도시의 나무라기보다는 시골의 나무며, 젊은이보다는 명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성숙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나무다. 매화의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옛 선비들은 시를 읊고 매화를 그리기를 즐겼으며, 뜰에는 매화를 심어 군자의 덕성을 배우고자 노력하며 매화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청빈한 한사(寒士)의 상징으로 삼았다. 특히 매화를 사랑했던 퇴계는 매화를 세속을 초월하여 청결을 지키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에 비유했다.


玉色天然超世昏 천연한 옥색은 세속의 어두움 뛰어 넘고

高情不入衆方騷 고고한 기질은 뭇꽃의 소란스러움에 끼어들지 않네


매화는 꽃과 향기와 나무의 모습이 관상의 대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화를 찬탄하는 글을 남겼고 매화와 연관된 설화도 많다. 그리고 애매가(愛梅家)라 부를 수 있는 매화를 사랑한 사람들의 얘기는 수도 없이 전해지고 있다.


단원 김홍도는 끼니를 걸러야 할 만큼 가난했지만 항상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하는데 김홍도는 그 매화가 썩 마음에 들었으나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이때 마침 어떤 사람이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로 3천 냥을 주자 김홍도는 2천 냥으로 매화를 사고 8백 냥으로는 술 여러 말을 사다가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는데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2백 냥으로 쌀과 나무를 집에 들였으나 하루 지낼 것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학자였던 정구(鄭逑)는 38세 때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왔다. 성주 회연에 초당을 마련하고 매화 1백 그루를 심어 ‘백매원(百梅園)’이라 이름 붙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멀리 하고 자연미를 한껏 향유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小小山前小小家 자그마한 산 옆에 조그마한 집을 지었도다

滿園梅菊逐年加 뜰에 심은 매화 국화 해마다 불어나고

更敎雲水粧如畵 구름과 시냇물이 그림처럼 둘렀으니

擧世生涯我最奢 이 세상에 나의 삶 사치함이 그지없네


사무실 앞 매화나무에 매화가 한창이다. 봄 햇살 가운데 활짝 핀 매화는 눈부셔 바로 쳐다보기도 어렵다. 그 매화나무 아래에 가만히 눈을 감고 한 마당 봄꿈[春夢]을 꾼다. 옛 사람처럼 작은 산 아래 조그마한 집 한 채 짓고 둘레에 매화나무를 심어 즐기는 내 생애 최고의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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