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살구꽃은 우리나라 시골 마을의 봄 풍경을 대표하는 꽃이다. 살구꽃을 비롯한 온갖 꽃들에 파묻힌 농촌 마을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추억의 고향 모습으로 뇌리에 박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살구꽃은 연분홍 꽃잎의 색깔이 봄기운을 더해주고 그 요염함으로 춘정(春情)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살구꽃을 요부(妖婦)나 기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옛사람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살구꽃이 지금보다도 더 많았던 것 같다.
大抵王城十萬戶 대저 왕성은 십만 호 가까운데
春來都是杏花村 봄이 오니 온 고을이 살구꽃 천지로다
여기서 왕성은 서울을 가리키는데 좀 과장된 문학적 표현이 있다고 할지라도 집에 한두 그루의 살구나무를 기르는 것은 보통이었던 것 같다. 초가집 돌담 옆에 또는 집의 뒤란에 있는 살구나무를 연상하는 것은 왠지 익숙하다.
살구나무를 한자로는 ‘杏’이라고 한다. 그런데 은행나무도 똑같은 글자를 쓰기 때문에 때로는 오해가 생기는 모양이다. 행단(杏檀)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친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뒤에는 학문을 하는 곳, 강당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행단에 심은 나무가 살구나무냐, 은행나무냐로 논란이 많았던 모양인데 지금은 은행나무인 것으로 의견 일치가 된 모양이다. 지금도 성균관 뜰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살구나무는 공부하는 장소와는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다. 특별히 낭만적인 취향이 아니라면 봄바람을 불러일으킬 살구나무를 구태여 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는 봄꽃들이 예년에 비해 볼품이 없다. 여기 교정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에 피는 꽃들이 꽃수도 적고 모양이나 색깔도 초라하다. 매화, 목련, 살구꽃이 다 그러하다. 아마 올 겨울의 이상난동 탓이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추측할 따름이다. 교정에 있는 멋들어진 살구나무에도 살구꽃이 환하게 피어났다. 작년 같은 눈부신 광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구꽃 아래 있으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고 마음도 설렌다. 아니, 설레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