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 한 그루 있는 매화나무가꽃을 피웠다. 지금은 완전히 핀 꽃과 봉오리가 혼재하고 있는데 이런 상태가 가장 보기에 좋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피는 시기가 이르면서 꽃도 더 밝고 환하다. 남쪽 지방으로 꽃구경을 갈 여유가 되지 못하니 매화밭의 장관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무실 앞에 있는 한 그루 매화나무를 통해 봄이 여기까지 온 줄을 알겠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불어서 오나", 간드러진 목소리의 노랫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교정에는 봄꽃을 피우는 여러 나무들이 있다. 산에서는 풀꽃이 먼저 봄을 알려주지만 도시의 뜰에서는 관상수의 나무꽃이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한다. 피는 순서는 나무의 특성에 따라 정해져 있지만 어느 때는 뒤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나무라도 위치에 따라 피는 때가 많이 차이가 난다. 여기 교정에서는 산수유가 제일 먼저 피고, 그 다음으로 미선나무가 뒤따른다. 거의 키가 자라지 않는 미선나무는 언제 보아도 회초리같이 가늘지만 순백의 하얀 꽃은 곱기가 그지 없다. 직장에 '미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계신데 이 꽃을 보면 그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미선'은 꽃이나 사람어느 쪽으로도 참 고운 이름이다.
산수유는 벌써 한창 때를 지났고, 매화와 진달래는 지금이 절정이다. 그리고 개나리는 이제 햇병아리 같은 노란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목련과 명자나무는 꽃봉오리가 나무 전체를 덮고 있다. 특히 명자나무의 서로 빨리 터질려고 경쟁하는 듯한다닥다닥 붙어있는 꽃봉오리는 무척 귀엽다. 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꽃봉오리 때부터 잘 살펴보아야 한다. 동물에서 어린 새끼가 귀엽듯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 상태에서 느끼는 맛이 다 핀 꽃과는 또 다르다.
이렇게 넓은 뜰을 가지고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도 행운에 속한다. 주변을 둘러싼 나무를 통해서 계절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도심이지만창문을 통해서 자연의 모습을 늘 볼 수 있다. 대개 아파트 생활은 창 밖이 시멘트 벽으로 포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산야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에게서 느끼는 기운에는 미치지 못한다.
2007년의 봄!
내가 이 세상에 나와 벌써 쉰다섯번 째 맞는 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봄의 잔치에 초대받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은올 봄의 향연에 나를 다시 초대해 주었다. 이 흥겨운 잔치터를 고맙게 즐기며 봄의 향기를 마음껏 음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