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세계의 10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한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북구에 있는 도시의행복도는 높았고, 서울은 꼴찌였다.국가별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도 우리나라는 늘 뒤쪽에 처져 있다. 대한민국과 행복은 아직까지는 영 인연이 없는가 보다.
참고로 작년에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178개국 중 1위를 차지한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2900달러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는 국민소득으로만 따지만 전세계 233개국에서 207위로 거의 꼴찌에 가까운 나라다. 행복도를 조사하는 기관에 따라 순위는 들쑥날쑥하지만 공통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조사에서 10위까지의 순서는 바누아투,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파나마, 쿠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등이다. 중남미 국가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낙천적인 국민성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중국이 31위, 일본이 95위로 나온데 비해 한국은 102위였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행복은경쟁과 욕망의 사회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나 소득은 큰 관계가 없다. 물론 행복감을 유지하는데 의식주의 만족이 중요하지만 일정한 생계 수준을 넘으면 풍요는 행복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결정적인 것은 사회 시스템과 사람의 마음이다. 경쟁과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결코 개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바누아투 국민들의 경우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 덕에 비를 피할 움막만 있으면 만족해하며, 부자가 되겠다거나 남보다 잘 살아야겠다는 말을 거기서는 듣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더 크고 좋은 집, 더 많은 재산을 쌓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한다.
그러나 행복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샘터' 2월호에 요사이 잘 나가는 박병호와 공병호 두 사람의 대담이 실렸다. 그 중의 일부는 이렇다.
박 : 요즘 우리 사회에 행복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인간을 자극하고 분발시키는 것이 행복인데, 종종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무마하고 왜곡하는 수단으로 행복의 개념을 변질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 : 그래요. 바로 그 안분지족(安分之足), 나는 노!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높은 목표에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 그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만약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행복에 지나지 않는 거죠. 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사람이 항상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을 통해 직접 행복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박 : 사람들이 당의정 같은 행복론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현실에 지쳐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사회를 따라가기 벅차니까 안주하고 싶은 거지요.
두 사람의 말에 수긍되는 부분도 있지만많은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안분지족(安分之足)은 결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은둔 철학이 아니다. 안분지족을 노래한 옛 선인들은 대부분 최고의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선택해 낮은 곳으로 내려간 사람들이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행위를 통해 얻는 행복은 순간적이고 자기 만족적이다. 그것은 한 방울의 꿀물과 같을 뿐이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더 앞서기 위해서 늘 두려움과 강박 관념에 시달려야 한다. 그런 것을 행복이라면, 참된 영혼의 평화를 의미하는 '참행복'이라는단어를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장유(張維)의 '복전설(福田說)'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다.
此心所安謂之福, 此心所不安謂之禍. 貴富, 人所欲也, 世有逃卿相棄千金, 而甘灌園弊?者. 卿相千金非所安, 而灌園弊?所安也. 安則樂, 樂則福在是焉, 不安則不樂, 不樂則禍在是焉. 夫以貴爲福者, 位替則賤, 以富爲福者, 財盡則貧. 得於外者, 有時而變, 有時而變者, 非眞福也.
마음이 편안한 것을 복이라고 하고, 마음이 불안한 것을 화라고 한다.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세상에는 높은 벼슬에서 달아나거나 천금을 내버리면서도 정원에 물을 주고 떨어진 옷 입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벼슬이나 천금이 편안한 것이 아니고, 정원에 물을 주거나 떨어진 옷을 입는 것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편안하면 즐겁고, 즐거우면 복이 여기에 있으며, 불안하면 즐겁지 못하고, 즐겁지 못하면 화가 여기에 있다. 무릇 귀한 신분을 복으로 삼는 사람은 지위가 바뀌면 천하게 되고, 부유함을 복으로 삼는 사람은 재물이 다하면 가난하게 된다. 밖에서 얻는 것은 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은 참된 복이 아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의 평안, 더 나아가서 영혼의 평화라고 말하고 싶다. 장유(張維)의 말처럼 그것은 결코 밖의 성취로 주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얽힌 거대한 그물망이다. 참행복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는 속에 존재한다. 지금과 같은 경쟁 체제에서 나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희생과 눈물을 전제로 한다. 그런 성취를 과연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을 비롯한 생물계는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경쟁을 통해 인간 사회는 발전해 나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직 약육강식의 경쟁만 있다면, 그래서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일등주의 세상이 된다면 경쟁에서 탈락한 다수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도 불안하고 즐겁지 못하다면 그도 또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이따끔씩 발표되는 행복지수에서 늘 꼴찌를 차지하는우리나라를 보면서 느껴지는 바가 많다. 그것은 성장과 욕망 추구형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업보일 것이다. 이젠 앞으로만 나아가는 무한 질주를 좀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손 잡고 천천히 걸어갔으면 좋겠다. 우리의 결단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는 의외로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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