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아미쉬의 용서

샌. 2007. 1. 9. 11:40

K형!

새해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했군요. 형에게는 왠지 진부한 새해 인사가 어울릴 것 같지 않네요. 여전히 잘 지내시겠지요?


미국에 있는 아미쉬 공동체를 요즈음 새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형은 그 종교적 공동체에 대하여 전에 별로 탐탁치 않게 말한 적이 있었지만요. 형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러나 공동체의 수명이 길어야 30년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래도 아미쉬 공동체는 근 3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어떤 평가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들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중심지에서 가장 반문명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전기, 전화, 자동차, TV)을 거부하는 그들은 겉모습만 보아도 구별이 됩니다.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역시 종교에서 나오겠지요. 개신교의 한 분파지만 신앙의 형태는 일반 개신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배당도 없고요, 선교 활동을 하거나 외부인을 설득하여 아미쉬 신앙을 갖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강조하지만 그러나 심판의 날까지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같은 기독교지만 참 많이 다르지요. 그들은 하느님이 가르침을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미쉬인들은 예수의 삶과 산상설교를 삶의 모범으로 삼아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믿지요. 그들은 가족, 공동체의 결속, 형제애를 중시하며 세속과 분리된 채 절대로 폭력을 행하지 않고 겸손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마 이 지구상에서 비폭력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미쉬인들은 욕설이나 폭력적인 행동에 침묵으로 답하도록 배운답니다. 그들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대주라’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아미쉬인들은 최근에도 인구가 계속 늘어나 현재는 약 15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확장되어 지금은 미국의 20개 주에 퍼져 있습니다. 아미쉬 공동체에는 전통이나 규율 이상의 영적인 생명력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K형!

형은 그곳에도 내적인 문제가 많다고 말했는데 사람 사는 곳에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존경스러운 점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도리어 욕되게 하는 세속화된 기독교인들이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평화로운 아미쉬 마을에 총격 사건이 일어나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펜실바니아 주에 있는 한 아미쉬 마을의 초등학교에 외부인이 침입해 여학생 5 명을 사살하고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었습니다. 범인은 끔찍하게도 여학생들의 발을 묶고 한 줄로 세운 후 총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도 자살했는데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아미쉬에 원한을 품은 것 같지는 않은데, 세 남매의 아버지인 평범한 가장이어서 사람들은 더욱 놀라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자신의 아이들을 등교시켜주고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건 후에 보인 아미쉬인들의 태도입니다. 범죄가 거의 없는 아미쉬 마을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곧 이성을 회복하고 이 충격적인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내 분별했습니다. 그것은 범인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었습니다. 평소의 생활이 그러했던 아미쉬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범인의 가족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걱정했다는군요. 장례식에 범인의 가족을 초청하고, 또 범인의 장례식 때는 아미쉬에서 대표로 조문을 가서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전역에서 답지한 위로 성금은 범인의 유가족을 위한 기금으로 쓰기로 했답니다.


K형!

정의의 이름으로 피의 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 속에서 시골 마을 한쪽에서는 이런 감동도 전해집니다. 인간이 진실로 얼마까지 용서할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도 있지만 아미쉬인들이 보여준 용기는 하늘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느끼게 됩니다. 스승 예수가 보여준 사랑과 비폭력의 정신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여전히 힘차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날씨가 싸늘합니다. 그러나 겨울은 겨울다워야 겨울이겠지요. 영육간에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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