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

샌. 2007. 3. 14. 09:50

시장과 마트야말로 우리 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재래시장이 사라지면서 대형 마트로 대체되는 현상은 도시화와 개인주의화 되는 우리 문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외형적인 변화는 당연히 인간 생활을 변화시키고 의식을 지배하게 됩니다. 어느 분의 글에서 사람을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으로 나눈 것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대의 인간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물건과 물건이 거래되는 장소가 시장이지만 그곳에는 인간의 체취가 묻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장터는 물건이 모이는 장소라기보다는 사람이 모이는, 특히 어른들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의 흥정이 그렇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축제 마당과 닮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시장에서 소를 거래한 후에는 꼭 거래 당사자와 거간꾼 사이에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나누었습니다. 작은 물건 하나를 사고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윤이 우선이겠지만 그러나 이윤 이상의 인간의 정이랄까 또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다양한 관계가 소중했습니다. 비록 시끄럽고 다툼이 생길지라도 시장은 인간이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반면에 대형 마트에는 인간과 인간관계는 없습니다. 상품과 나 사이에 이루어진 건조한 물질관계밖에 없고, 거기서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고, 상품 또한 가격으로만 가치가 매겨집니다. 진열대에는 상품만 있지 파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규격화된 시스템 하에서 움직일 뿐입니다. 마트는 편리함과 효율이 최우선가치로 지배하는 곳으로 현대 문명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중의 하나입니다. 소비 중심의 익명성의 공간이 마트입니다. 사람들이 재래시장보다는 말끔한 대형 마트에 끌린다는 것은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그런 시스템에 맞게 적응되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마트형 인간의 특징을 글을 쓴 분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첫째, 요리에서부터 간단한 못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한다. 돈으로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사서 쓰거나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일을 해결한다. 마트형 인간에게 노동은 노동자에게 부여된 속성이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둘째, 늘 신상품에 목마르고 무조건 화려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마트 진열대는 일종의 쇼무대와 같다. 진열대 위 상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관객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몸부림치는 배우와 같다. 마트형 인간에게 이 모든 소도구와 퍼포먼스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유희가 된다.

셋째, 돈만 있으면 지상천국이 결코 꿈이 아님을 확신한다. 마트는 결코 가상현실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신기한 모든 것이 돈만 내면 바로 내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마트형 인간에게 지상천국은 곧 돈이다. 돈이 곧 구원이고 해방이며 자유가 된다.

넷째, 돈만 내면 원하는 모든 것이 해결되니 ‘관계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 참으로 취약해진다. 물건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공정과 자연 자원이 동원되는지, 얼마나 많은 착취와 불평등이 숨어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제 소비행위가 사회와 지구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마트형 인간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도시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그럴 것입니다. 지역적으로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마트형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마트형 인간은 관계보다는 시스템에 의존하고 소비지향적이며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잠재적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마력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비해 부유하게 되었지만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더 여유로워졌거나 행복해지지 못했습니다. 삶은 무엇인가에 더욱 쫓기고 있고, 외양은 화려해졌지만 영혼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소유나 욕망 충족은 순간적 자기만족과 쾌락을 줄 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갈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내 속에는 시장 사람과 마트형 인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트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누군가가 악마처럼 속삭입니다. 골치 아프게 세상에 대해 깊이 사고할 필요도 없고, 또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고 말입니다. 네 행위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역주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근원적으로 시장 사람과 그런 공간을 향한 지향성이 있습니다. 그 갈망이 너무나 강해 세상과 보조를 맞추기 힘듭니다. 그것이 내적 갈등의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이 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참다운 인간 활동의 한 가지 목적은 우리 자신을 타고난 이기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슈마허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것은 이웃과 또 사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계맺음이 도시나 마트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트형 인간은 욕망과 이기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타자와 대립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과의 괴리 현상이 도시가 발달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소유보다는 관계가 우선되고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산에 참여하는 자급자족적인 시골 공동체가 그래서 자꾸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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