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驟雨 / 良寬

샌. 2006. 6. 7. 12:58

오늘 구걸하다 소나기를 만나

잠시 낡은 사당으로 비를 피하네

우습구나, 바랑 하나와 바리때 하나

생애 맑고 깨끗한 무너진 집의 바람

 

今日乞食逢驟雨

暫時廻避古祠中

可笑一囊與一鉢

生涯潚灑破家風

 

- 驟雨 / 良寬

 

료칸[良寬, 1758-1831]은 무욕의 화신, 거지 성자로 불리는 일본의 선승이다. "다섯 줌의 식량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라는 말이 뜻하듯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무욕과 무소유의 최고 경지를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료칸은 떠돌이 걸식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써가며 내면의 행복을 유지했다. 말 그대로의 청빈을 실천하며 산 사람이다. 단편적으로 듣게 되는 료칸의 일화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료칸의 생애를 통해 대현[大賢]은 곧 대우[大愚]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깨달음이란 바보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료칸은 평생 명성을 멀리 하며, 어린아이와 작은 생명들을 사랑했다. 늙어서도 료칸이 제일 좋아한 것은 아이들과 어울려 연을 날리고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것이었다.

 

'료칸 선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이나 산으로 놀러 가기를 좋아했다. 그때마다 한참을 돌아서 간다거나 어떤 곳에서는 마치 장애물 경주를 하듯 겅중겅중 뛰어넘으며 갔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꽃을 밟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애써 핀 꽃을 밟는 것은 꽃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또한 꽃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그것을 밟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료칸 선사는 탁발을 하는 도중에 새 떼를 만나면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새들이 날아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을라치면 어느새 새들이 날아와 걸망 속에 든 쌀이나 잡곡을 쪼아먹곤 했지만 선사는 굳이 그들을 쫓으려 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어느 날 료칸 선사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 배의 뱃사공은 성질이 못된 이였다. 그는 료칸 선사가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음을 알고 '좋다. 오늘 내가 이 선사가 화내는 모습을 한번 봐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손님이 선사 한 사람뿐이었다. 뱃사공은 강 한가운데서 실수인 척하며 노로 물을 튀겨 선사의 옷을 적셨다. 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뱃사공은 '어럽쇼!' 하며 이번에는 배를 좌우로 크게 흔들어 선사를 강물에 빠뜨렸다. 선사는 헤엄을 칠 줄 몰라 곧 익사할 지경이었다. 뱃사공도 결코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강물로 뛰어들어 선사를 구해냈다.

선사는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뱃사공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죽었을 것이오."

배가 선착장에 닿자 선사는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덕분에 생명을 구했소. 감사합니다."'

 

료칸의 말년에 시인이며 제자인 데이신[貞心,1798-1872] 비구니와의 정신적인 사랑 또한 범인들과는 다른 것으로 기억된다. 료칸은 데이신을 통해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남녀간에 육체적 욕망을 떠난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이 가능할까,인간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무욕과 무집착, 무소유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료칸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정신적, 영적 경지를 속세의 우리들이 감히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허망한 꿈을 쫓아 평생을 허둥대다가 가는 우리들에게 선사의 생은 죽비소리 같은 깨침을 준다.

료칸의 또 다른 시가 있다.

 

한평생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어

자연 그대로 천진에 몸을 맡기고 사네

자루 속 석 되의 쌀

이로리 옆 한 다발의 땔감

누가 미오(迷悟)를 묻는가

명리는 티끌과 같은 것

밤비 내리는 초암

두 다리를 마음껏 쭉 펴고 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