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슬로 라이프(3)

샌. 2005. 12. 23. 14:33

<비폭력> - 인간 중심의 사고야말로 폭력적이다.


이제까지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자연을 수단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공리주의에 발목 잡혀 있었다. 우리들은 인간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인 ‘생명의 민주주의’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비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민주주의 - 슬로 폴리틱스> - 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그럴 여유가 있으면 돈벌이나 다른 경제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과 자기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에, 어째서 우리들은 시간을 좀더 할애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은 자신의 정치 참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분명하게 확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경제나 군사를 게을리 할 용기를 지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본래 민주주의란 느린 장치이니 말이다.


<전쟁> - 낭비 애국주의의 결정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에 따라, 전쟁도 환경 파괴도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에 봉사하는 한, 이 모두는 선이자 정의인 것이다.


<진보> - 위험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 타이타닉 호의 운명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빙산을 향해 돌진해 가는 배 안에 있고, 결국 빙산에 부딪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도무지 파악하지 못한다. “빙산에 부딪친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그 소리야?”라고 비웃음을 날리며, 엔진을 멈추라고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상식이고 비현실적이라도 몰아붙이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진화주의’는 하나의 종교적 광신이라고 해도 좋다.


<남북 문제> -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북’의 눈에서는 피눈물 난다.


미국인은 1인당 방글라데시인 168명 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지구상의 인간 모두가 북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구 네 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분발하지 않기 - 장애인> - 뒤처진 것이란 없다.


자신은 게으름뱅이로 머물고 싶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고 싶고, 입고 있는 것은 누더기여도 좋으니, 그냥 자신을 내버려두어 달라고. 단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도 그것은 스스로에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페이스가 있고, 기준이 있다. 거기에 맞추어 자기 나름대로 살고 싶다.


<노인 - 어린이> - ‘노인은 노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가 힘든 비정상 사회.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로, 어림 그 자체를 간직한 채 빛나는 사회. 노인이 노인으로, 어른의 세계로부터 물러나 앉은 것이 아니라, ‘나이 듦’의 시기로서의 시간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라야 비로소 성숙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모 - 시간> - 돈과 시간, 자유이자 감옥.


우리는 모모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제까지 입버릇처럼 말해 온 풍요로움, 편리함, 효율성가 같은 말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모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지 않을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돈도 되지 않는, 그저 흥겹고 즐겁기만 한 놀이의 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모는 그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분명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놀이> - 헛되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해지는 것.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벌판에서 천진스레 뛰어 노는 아이들을 가졌다. 참새떼들이 제멋대로 날아다니다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것처럼, 그들은 마음대로 무리를 지어 놀다가 일제히 달아난다. 그러한 뒷모습은 우리에게 무언자 말해 주지 않는가? 실제로 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뒤흔들어 놓는다.


<에코 이코노미> - 경제학과 생태학, 이제는 서로를 껴안아야 할 시간.


지구 환경의 위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 시간의 틀에 생태 시간의 틀을 끼워맞춰 놓고, 그 결과 삶의 기반인 생태계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어 버리는 사태다. 환경과 경제 관계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 즉 환경이 경제의 일부라고 하는 사고로부터 경제가 환경의 일부라는 사고로의 전환을 뜻한다.


<에도(江戶)> - 에도, 지속 가능한 사회의 전형.


에도 시대는 재생은커녕 쓰레기와 폐기물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고도로 정제된 순환형 사회였다. 수천만 년의 시간에 걸쳐 축적된 화석 연료를 불과 수십 년 만에 소진해 버려야 유지되는 현대사회와 달리, 그 시대의 사회 구조는 태양 에너지만으로 충당될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식물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것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식물을 길러내는 식물 순환을 기본으로 한 사회였다.

오랜 시간 일본에 머물렀던 한 외국인은 ‘가난한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가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시대에 대한 인상을 밝혔다.


<플러그 - 언플러그> - 시스템에서 플러그를 뽑고, 공동체에 플러그하기.


자신의 콘센트를 좀 헐겁게 만들어 볼까?

그게 없으면 큰일 난다고 여겨진 것.

꼭 이래야 한다고 여겼던 것.

그것들을 몽땅 한번

머리 속에서 스스로 뽑아 놓아 볼까?

자신에게로 돌아가 볼까?

자신의 마음의 문에 귀를 대고, 한번 들어 볼까?

그리고 마음의 문에 노크해 볼까?


<비전화(非電化)> - 아주 조금만 불편해질 용기를 가져 보자.


‘비전화’란 전력과 화학 물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생활을 줄여 나가자는 의미로, 일본의 한 발명가가 만들어 낸 말이다. 에너지와 화학 물질의 과도한 사용이라는 환경문제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거기서부터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일이야말로 발명가에게 있어 진정한 모험이 아닐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텔레비젼> - 남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을 들여다볼 것!


최근 슬로 라이프라는 말을 자주 써 가며 ‘여유롭고도 느긋하게 보내는 노후’를 팔려고 하는 기업과 미디어가 많다. 그러나 대형 모니터 앞에서 장시간 텔레비전을 보는 삶이 슬로 라이프라고는 생각지 말자. 진짜 슬로 라이프는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활기차고도 역동적인 생활 방식에 있을 것이다.


<자전거>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누가 이겼을까요?


바쁘고 환경에도 나쁘고 몸에도 마음에도 좋지 않은 도시형 생활 방식을 어떻게 ‘슬로다운’시킬 수 있을까? 그 ‘어떻게’에 해당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자전거다.

자동차의 대체 수단으로서 자전거가 가진 장점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자전거에 적합한 교통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자동판매기 - 물통> - 나쁜 디자인 대 좋은 디자인.


자동판매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쁜 디자인(bad design), 나쁜 테크놀로지(bad technology)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동판매기를 보이콧하기로 했다. 대신 물통을 가지고 다닌다. 한 사람이 매일 사서 마시는 페트병이나 캔 음료 두 개를 사지 않는다면, 1년이면 730개, 돈으로 치면 약 8만 7천엔이 절약된다. 또 에너지 절약과 이산화탄소의 배출 감소에도 공헌할 수 있다. 보온 물통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담아 가지고 다니면 기분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자동차> - 이 속도가 절약해 준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A가 차를 산다. 이제까지의 통근,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 장보러 다닐 때의 불편이 이로써 모두 해소된다. 즉, 이러한 용무를 더 빠르고 간단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A는 굳게 믿는다. 그러난 자동차를 산 그가 이제부터 한숨 돌리며, 자동차 덕분에 여유로워진 시간을 여가로 유유자적 즐길 것인가 하면,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모처럼 자동차라는 편리한 물건이 생겼으니, 그는 여기저기 더 바쁘게 더 부지런히 드나들게 된다. 이제 자동차도 생기고 했으니 이제까지 차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불편한 장소나 먼 곳까지도 서슴지 않고 가게 된다는 것이다.”

A가 손에 넣게 된 스피드라는 힘은, 이동하는데 들여야 할 시간의 감소가 아니라, 더 먼 거리를 주파하는데 쓰이게 될 것이다. 자동차로 벌어들인 시간이 이제 더 먼 거리로, 더 큰 출력으로, 보다 많은 비즈니스 미팅으로 전환된다.


<테크놀로지 - 아트> - 기계 없이도 살 수 있는 삶의 기술을 회복하기.


쾌락을 배가시키는 기술과 기계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으로 그러한 기계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쾌락을 느끼는 능력, 즐길 줄 아는 능력은 둔해지고 있다.

플러그를 뽑는 일은, 테크놀로지나 기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쾌락, 즐거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술인 ‘아트’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언플러그’는 결코 금욕적이거나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대단히 적극적이고 쾌락주의적인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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