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인디언 이름

샌. 2005. 6. 23. 15:17

‘자연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 한 종족이나 민족 전체가 자연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희귀할 것이다. 그래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이야 말로 특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소개한 책을 읽어 보면 인디언들은 생래적으로 자연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적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나는 부족의 어른과 함께 산길을 가다가 지팡이가 필요해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새로운 지팡이를 들고 자랑스럽게 걷고 있는 나를 보고 부족의 어른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그것을 손에 넣었는가고 물었다. 나무에게 허락을 구했는가? 꼭 필요한 만큼만 잘랐는가? 나무에게 선물을 바쳐 감사의 표시를 했는가? 내가 그냥 나뭇가지를 잘랐을 뿐이라고 대답하자, 그 어른은 나를 데리고 나무에게로 가서 가지가 잘라진 부분을 만지게 했다. 그리고 무엇을 느끼느냐고 물었다. 내가 축축한 것이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말했다. 그것은 나무가 울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자연에게서 무엇을 취할 때는 반드시 그 주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일깨웠다.’


이 이야기는 어느 인디언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말 한 것이다.

인디언들의 자연에 대한 의식은 생래적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교육을 통해서 대대로 전해진 것 같다. 아이 때부터 자연과의 일체감뿐만 아니라, 신비함, 홀로 있음과 침묵의 가치를 가르친 것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분리된 무생물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큰 생명체였다. 인간이란 그 생명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결코 자연과 분리되어서 살아갈 수 없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침묵과 빛으로 채우는 일을 그들은 신성하게 여겼다. 소유를 탐내 보지 않은 그들은 가난했지만 자유롭고 풍요로운 종족이었다.

밀려오는 물질문명의 물결에 인디언들이 소멸되어 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역사적 필연인지도 모른다. 흰 얼굴의 사람들은 인디언들을 원시적이며 야만적이라고 여기고 내면의 정신적 깊이는 읽을 줄 몰랐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의 이름은 참 독특하다.

이름을 지을 때 인디언들은 대개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태어날 때 바람이 몹시 분 아이는 ‘바람의 아들’이 되고, 지빠귀가 울면 ‘지빠귀가 노래해’가 되었다. 그래서 인디언 이름에는 동물이나 자연물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인디언 이름에는 성(姓)이 없다. 그것은 그들이 자연의 모든 생명을 한 가족으로 여겼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동물과 나무, 풀들까지도 한 혈족이고 친척이었다. 따라서 굳이 자기들만의 성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삶에서 그들이 겪는 사건이나 재능, 일에 따라 이름이 수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의 이름은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인디언 이름은 이렇게 자연에 가깝다. 이름 자체에서 그들이 자연을 대한 태도, 또는 자연에의 친밀감이 잘 드러난다. 우리 이름에서 자연에서 따온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과는 대비가 된다. 그나마 아무 의미 없는 서양 이름 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인디언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다는 느낌 이상의 어떤 울림이 전해 온다. 그것은 생명 존재로서의 원초적 본성을 자극해 주고 있다. 또는 이미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자연성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향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나도 어쩐지 인디언식 이름을 하나 갖고 싶다.


일부 인디언 이름들을 추려 보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이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곰이 노래해

달과 함께 걷다

아침에 따라가

땅 한가운데 앉아

하얀 암소가 보네

나비 부인에게 쫓기는 남자

빗속을 걷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두려워 해

너무 가난해

머리맡에 두고 자

동쪽에서 온 사람

어디로 갈지 몰라

물 속을 걷다

상처 입은 가슴

노란 윗도리

뿌리 내린 옥수수

하얀 새

어린 늑대

시끄럽게 걷는 자

열 마리 곰

너 잘 만났다

곰에게 쫓겨

작은 거인

구르는 천둥

발로 차는 곰

외로운 남자

얼굴에 내리는 비

빗속을 달려

꽃가루가 얹히는 꽃

노래하는 물

꽃이 핀 아름다운 땅

노란 곰

행복하게 춤 춰

어린 까마귀

느린 거북

빨리 보네

알 낳는 거북

독수리 날개를 펴는 자

들소 추장

오솔길

겁 안 나

많은 발걸음

상처 입힌 화살

앉은 소

미친 말

성스런 바람 여인

새벽 별

붉은 구름

들소 발자국

빗방울

귀가 하나뿐인 말

서 있는 곰

큰 나무

도망친 길

작은 버드나무

하얀 천둥

옥수수 심는 자

외로운 늑대

문 여는 자

푸른 초원을 짐승처럼 달려

옷이 작아

잘 생긴 호수

잠자는 토끼

하늘을 걷는 자

지평선 너머 흰 구름

천막도 없이

침에 찔린 팔

푸른 들판에서 서로 쫓아다녀

깃털 하나


이런 인디언식 이름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 서로 부르게 된다면 세상은 훨씬 더 낭만적이고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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