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진보는 단순화입니다

샌. 2005. 5. 31. 15:49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달력이 숨 가쁘게 휙휙 넘어갑니다.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싶으면 어느덧 주말이 다가와 있고, 월초다 싶은데 어느 순간 월말이 되어 있음에 놀랍니다. 며칠째 계속되는 초여름 날씨가 그런 느낌을 더해줍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탁상 달력에는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그림과 함께 신영복님의 ‘진보는 단순화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매일 이 글을 보며 한 달을 지냈습니다. 짧은 한 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 때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시끄러웠습니다만,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정치판에서 서로 싸우는 모습은 비슷한 도토리들이 서로 자기 키가 더 크다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서울 시장이 대학 강연을 다니며 학생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버스 개혁, 뉴타운 개발, 청계천 사업을 보면 시장님은 진보 같은데 왜 보수 한나라당에 있습니까?”라고 하는 것이라니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든 상관없이 변화는 진보인가요?


‘진보는 단순화입니다’라는 역설적인 명제에는 혁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생명의 내부에서 저절로 움터 나오는 정신의 혁명입니다. 진보란 결코 개선이나 발전과 동의어는 아닙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진보는 무한 팽창하며 파멸을 향해 치닫는 문명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의 바다에 빠져 있지만 - 이마저도 지구에서 혜택 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누리고 있지만 - 삶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있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고, 무한 경쟁의 무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문명의 전환을 위해서 개인에게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런 새로운 방향 중의 하나가 삶의 단순함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단순함이란 당연히 마음과 연관을 맺고 있는데, 저는 이것을 소욕(少欲)이라고 풀고 싶습니다. 소욕(少欲)은 세상과 어울리며 적당히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 대해 거꾸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결코 만만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삶의 단순함’에 대해서는 두 분의 스승이 떠오릅니다.


한 분은 간디입니다.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무소유의 정신이야말로 삶의 단순함의 바탕을 이루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디는 인도를 발전시키는데 근대화된 도시와 엘리트에 의지하기 보다는 농촌과 민중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서구의 개발 모델이 아닌 느리더라도 작은 기술에 의지하는 세상을 꿈꾸며 몸소 실천했습니다. 인도가 만약 간디가 제시한 길을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런 꿈을 이루기에 나라가 너무 큰 것도 같고, 문명의 흐름을 역류해 가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 보다는 정신의 풍요와 행복,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행한 일입니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모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간디의 이 말은 끝없이 물질의 갈증에 허덕이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또 한 분의 스승은 소로우입니다. 소로우 역시 소비적이며 공격적인 문명의 등장에 대해 여러 경고를 남겼습니다. 그는 단순 소박한 생활을 통해서 삶을 풍요롭게 향유하는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소로우와 자연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문명이 제공하는 사치품들, 또는 생활의 편의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대부분 필요불가결한 것들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인류의 진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소로우는 말합니다.


‘생활을 단순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이 더욱더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으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이라. 그리고 다른 일들도 그런 비율로 줄여 나가라. 진정한 부를 누릴 수 있는 가난, 나는 그것을 원한다.’


세상은 소로우의 시대보다 훨씬 더 험악해 졌습니다. 불가사리 같은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길은 각 개인의 깨어남밖에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소로우가 말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부추기는 세상의 가르침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습니다. 무소유나 무욕이 너무 멀리 있다면 우선 ‘적은 소유로 만족하기’와 ‘소욕’의 마음공부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와 세상을 살리는 확실한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5월 달력을 넘기며 거기에 적혀 있는 ‘진보는 단순화입니다’라는 명령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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