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나무에 약을 치다

샌. 2005. 5. 23. 15:41

분무기를 매고 처음으로 농약을 뿌렸습니다. 약은 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경계수로 심어놓은 회양목이 고사 직전 상태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징그럽게 생긴 벌레는 떼어낼 수가 있다지만 새까맣게 붙어있는 알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수 십 그루가 되는 회양목을 베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회양목이 이렇게 벌레가 많이 끼는 나무인 줄 알았다면 심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금은 후회를 합니다. 이왕 버린 몸이 되었다고 나머지 나무들에도 농약을 쳤습니다. 나무 중에서는 벚나무가 그 다음으로 벌레에 취약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벚나무 한 그루에 연초록의 큼직한 벌레들이 달라붙어 나뭇잎을 갉아먹기에 모두 잡아주었더니 그 뒤로는 괜찮았습니다.


나무를 심고 길러보니 나무마다 성향이나 기질이 다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종류라도 유난히 약해서 안스러운 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심어진 위치에 따라서도 성장 정도가 다릅니다. 전에는 심어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한 그루의 온전한 나무가 되기까지 고통이 수반되는 내적 단련기를 거쳐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사람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니 나무는 오히려 사람보다 더 섬세합니다. 옮겨 심은 나무는 1년 정도는 몸살을 합니다. 해가 바뀌어야 편안해 하는 모양이 보입니다. 제가 작년에 직장을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1년 동안 힘들었는데 나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같은 생명으로서의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이 땅에 찾아와서 잘 적응해 주길 빌며 다시 한 번 바라봅니다.


약을 치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마당으로 뛰어나오며 깜짝 놀랍니다. 마당에 쑥을 널어서 말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옆에서 농약을 뿌려댔으니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무심코 하는 행위가 이웃에 피해를 줄 수도 있음을 다시 배웁니다. 잠깐만 이웃을 돌아봤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겠지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위들이 옆 사람에게 부지불식간에 불편을 끼치게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만만하게 여겨지는 가족이라고 아내에게, 자식에게 퉁명스럽게 대합니다. 그러다가 가끔씩 혼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니 이것은 제 병통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많이 피곤합니다. 주말이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껏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고 힘든 이상으로 재미와 보람이 있지만 어떤 때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옆의 동료는 어제 점봉산으로 야생화 촬영을 다녀왔다는데 괜히 부러워지는군요.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구속을 낳고, 그만큼 근심거리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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