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무지한 사람들

샌. 2005. 6. 7. 14:21

‘최근 송진이 몸에 좋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남산 소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무분별하게 소나무 껍질을 도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남산을 오른다는 한 시민은 “얼마 전 한 부부가 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있길래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송진향을 맡으면 건강에 좋다’고 대답해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기조차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이기성과 잔인하고 천박한 속성이 무섭습니다. 그놈의 어두운 기운은 분명 전 생명체를 파괴시키고 말 것 같습니다.


터에 내려가면 가끔씩 뒷산에 오릅니다. 외딴 시골에 있는 작은 산이라 산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거의 만나기 못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산에 올랐을 때 산길 주위가 너무나 많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야생화를 캐 간 것인지 나무를 캐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삽으로 파헤친 구덩이들이 흉측스러울 정도로 많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캐낸 뒤에 덮어주지 않아 그대로 드러난 산의 속살이 여간 아파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제 현장을 본다면 사람들이 미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파낸 뒤에 다시 흙을 매워주는 성의만 보였어도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토를 망가뜨리는 대형 공사 프로젝트를 경제 개발과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거리낌 없이 벌이는 작태들이나 이런 개인들의 작은 행태나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바탕에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무지와 맹목적 이기심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야생화 관련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예전과 달라진 점을 보게 됩니다. 야생화 소개를 하면서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이나 사진을 찍은 장소를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친절하게 지도까지 보여주며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한 번 그렇게 공개된 장소는 탐욕스런 인간의 발길에 견뎌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희귀한 식물이 통째로 사라지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꽃밭은 황폐해져 버린다는 것을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좋은 꽃 소식을 마치 비밀결사 대원들이 하듯 은밀한 암호를 주고받듯 해야 한다니 이렇게 변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부 꽃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마저 좋은 배경을 만든다고 주변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주변은 발길에 짓밟혀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꽃 주위의 낙엽을 긁어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꽃을 꺾어서 다른 데에 갖다놓고 찍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예쁜 꽃 사진을 만들려는 욕망은 요즈음 세상의 성형 미인 열풍과도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들이 빨리 깨우친다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가위를 갖고 다니며 배경을 정리한다고 꽃 주변의 방해되는 풀을 자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후회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짓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못된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이 같은 사진을 찍을까봐 아예 꽃을 꺾어서 죽여 버린다는 믿지 못할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인간 마음의 황폐화가 극에 달한 느낌입니다.


몇 년 전에는 산나물 관광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 북새통에 산속의 나물들 씨가 마른다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나물뿐만이 아니라 막 돋아나는 새싹들이 무지막지한 인간들의 발길에 짓밟혀 엉망진창이 되었지요. 도시의 시멘트 속에서 살다가 고작 자연을 찾아가 하는 짓거리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그나마도 외지인들의 산나물 채취를 전면 금지를 시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인간의 못된 짓들을 애꿎게 칼질을 당한 저 남산의 소나무들이 무언으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글쎄 송진향이 건강에 좋다고 멀쩡한 소나무의 껍질을 벗겨낼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거기다 코를 박고 있으면 정말로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믿는 걸까요? 그런 발상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요?


같은 인간들끼리도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세상이니 하찮은 풀이나 나무들 가지고 푸념을 늘어놓을 계제가 아니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물이나 작은 풀 하나를 소중히 여길지 모르는 사회, 창궐하는 이기심과 경제적 논리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는 결코 미래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은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반면에 냉정하고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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