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그 날이 오면 / 심훈 >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뛴다.
영국의 한 비평가는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로 들었다고 한다.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했으나,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의 한 쪽에서는 일제에 협력하며 권세를 누린 친일파 문인들의 부끄러운 행적도 있다.
옛날 교과서에서 배운 존경하던 시인들이 대부분 친일의 글을 남긴 것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과거 청산 문제가 지금껏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직도 조국이 반 토막난 채 맞는 광복 59돌 - 진정한 광복의 태양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떠오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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