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샌. 2004. 7. 27. 09:2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

 

짙은 먹구름이 걷히니 서쪽에서는 또 다른 먹구름이 나타난다.

피 흘리며 두꺼운 쇠항아릴 들어올리니 더욱 완강하게 내리누르는 무리들이 생겨난다.

그걸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방주나 되는 것처럼 변함없는 옛노래 가락으로 읊으며 추억한다.

어찌 사회 정치적 현실뿐이랴?

우리 마음 속에 있는지독한 고정 관념과 편견의 쇠항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큼 위험하고도 두껍다.

인간은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자유와 평화의 나라에 이를 수 있을까?

먹구름이 걷히고 쇠항아리도 사라진 세상, 인간 내면에 맑은 하늘이 빛나는 세상은 얼마나 멀리에 있는가?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부디 착각하지 말자.

나는 지금 하늘을 보고 있다고, 나는 지금 구름 한 송이 없는 맑은 하늘아래서 뛰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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