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샌. 2003. 11. 29. 10:46

4년 전 농촌 마을 한가운데에 터를 잡을 때 여러 사람들이 걱정했다.
도시 생활을 하다가 시골 마을 가운데에서 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시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생활에 젖어 있다가 모든 것이 노출되는 시골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를 했다. 가능하면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 덜 간섭받는 장소를 고르라고 충고했다.

도시 아파트 생활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립성이다.
대개의 경우 한 가구 한 가구가 서로 고립된 섬이다. 옆 집에 신경 쓸 일도 없고, 옆 집으로부터 간섭받지도 않는다. 이것을 나만의 공간에 대한 안락함으로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웃과의 단절로 느낄 수도 있다.

당시에는사람들의 걱정을 무시해 버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면 된다고 그쪽 환경에 눈높이를 맞추고 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도시 생활로 대표되는 문명에 반감을 갖고 있던 때라 그 어떤 어려움이나 희생도 견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해가 지나면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데서 마찰이 생기고 어떤 때는 감정적인 다툼으로까지 발전했다. 시끄러운 도시를 피하러 선택한 생활이 더 분주하고 복잡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과의 논쟁과 싸움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런 과정에서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간에 대한 실망은 회복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내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양쪽 사이에 엉거주춤 끼어있다.
지금도 결단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간의 과정이 최초의 선택을 후회하게도 만든다.
한 집단을 떠나 다른집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마음만으로 될 일이 아님을 배우고 있다. 관념과 실천은 하늘과 땅 차이다.
머리로는 온 우주도 들었다 놓았다 하지만 몸으로는 작은 가시 하나가 들어와도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30년 이상 도시 물을 먹은 사람의 사고 방식이 시골 정서와 코드가 맞을 리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상대편에서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보고 여러 번 놀랐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이 이웃간 충돌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이런 것이 적응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불가피한 마찰이라고 생각되다가도 인간적 서운함과 실망은 어쩔 수가 없다. 아마 그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시에서의 문제가 시골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땅 한 평에 집착하고 내 것만을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은 도시와 시골에 구별이 없다.
이상향을 그리고 탈서울을 한다면 나와 같이 쓴 잔을 마셔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마을 사람들과는 너무 가까이도 말고 그렇다고 멀리도 말며 살아가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도시 중심적 발상은 하지 말라며 비난했을 터인데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적당한 거리가 도리어 서로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너무 가까우면 실망도 큰 법이다.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에서 지내는 것도 삶의 한 기술일지 모른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그것이 어찌 시골 마을뿐이겠는가.
내 마음과 생활이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신하게 살아가야 겠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인위적인 장막을 쳐놓는 것만 같아 마음이 밝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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