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전원의 즐거움 / 문일평

샌. 2003. 12. 14. 13:46
옛 글 한 편을 읽는다.
文一平(1888-1939)님의 글이니 아마도 70년쯤 전에 씌어진 글일 것이다.
낯 선 한자 단어들이 자주 나와 읽기에 거북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고풍스러운 맛이 느껴져서도리어 새롭다.

그러나 이런 전원 생활을 그리다가 실족한 사람도 많음을 명심하자.


제목; 전원의 낙(樂)

경산조수(耕山釣水)는 전원생활의 일취(逸趣)이다.
도시문명이 발전될수록 도시인은 한편으로 전원의 정취를 그리워하며 원예를 가꾸며 별장을 둔다. 아마도 오늘날 농촌인이 도시의 오락에 끌리는 이상으로 도시인이 전원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류는 본래 자연의 따스한 품 속에 안겨 토향(土香)을 맡으면서 손수 여름지이를 하던 것이니 이것이 신성한 생활이요 또 생활의 대본(大本)일는지 모른다.
이른바 운수(雲水)로써 향(鄕)을 삼고 조수(鳥獸)로써 군(群)을 삼는 도세자류(逃世者流)는 좋은 것이 아니나 궁경(躬耕)의 여가에 혹은 임간(林間)에서 채약(採藥)도 하고 혹은 천변(川邊)에서 수조(垂釣)도 하여 태평세(太平世)의 일일민(一逸民)으로써 청정(淸淨)하게 생활함은 누가 원하지 않으랴.

유수유산처 무영무욕신(有水有山處 無榮無辱身).
이것은 고려때 어느 사인(士人)이 벼슬을 내어놓고 전원으로 돌아가면서 자기의 소회(所懷)를 읊은 시구이거니와 세간에 어느 곳에 산수가 없으리요마는 영욕(榮辱)의 계루(係累)만은 벗어나기 어렵다. 첫째 심신의 자유를 얻어야만 하는데 심신의 자유는 염담과욕(염淡寡慾)과 그보다도 생활안정을 반드시 전제요건으로 삼는다.

그렇지 않으면 산수 사이에 가 있어도 무영무욕(無榮無辱)의 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구를 읊은 그로 말하면 아마도 그만쯤한 수양과 여요(餘饒)는 있던 모양이다. 아무리 단사표욕(簞食瓢欲)의 청빈철학(淸貧哲學)을 고조(高調)하는 분이라도 안빈낙도(安貧樂道)할 생활상 기초가 없고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 아닌가.
인생이 공부는 고요한 곳에서 하고, 실행은 분주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으나 그러나 권태(倦怠)해지면 다시 고요한 곳으로 가는 것이 상례이니 전원생활은 권태자의 위안소이다.

권태자뿐이 아니라 병약자에 있어서도 도시생활보다 전원생활이 유익함은 말할 것도 없다.
맑은 공기와 일광과 달큼한 천수(泉水)는 확실히 자연의 약석(藥石)이며, 좋은 산채(山菜)와 야소(野蔬)며 씩씩한 과실은 참말로 고량(膏粱) 이상의 진미이니 이것은 전원생활에서 받는 혜택 중의 몇 가지로서 병약자에게도 크게 필요한 바이다.

흔연작춘주 적아원중소(欣然作春酒 摘我園中蔬).
이것은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명구로서 이익재(李益齋)의 평생 애송하던 바이다.

청복(淸福)이 있으면 근교에 조그만 전원을 얻어서 감자와 일년감을 심그고 또 양이나 한 마리 쳐서 그 젖을 짜 먹으며 살아볼 것인데 그러나 이것도 분외과망(分外過望)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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