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춥고 쓸쓸한 마가리

샌. 2003. 12. 22. 18:21
현관문을 여니 싸늘한 냉기가 밀려온다.
집안 공기가 바깥보다 더 차다. 발바닥이 시러워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

스위치를 올리니 보일러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수도물도 정상으로 나온다. 이번 추위에 바깥 수도펌프가 얼었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안에서는 아직도 새 집 냄새가 난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커튼과 창문을 모두 연다.
겨울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리창을 거친 햇살은 따스하다.

뒷 집 개가 마당까지 쫓아와서는 컹컹대며 짖는다. 여기가 자기네 집인지 아는가 보다. 웃기는 놈이다. 손짓으로 쫓아보지만 꿈쩍도 안한다.

오디오 전원을 넣는다.
Secret Garden의 `Awakening`이 흘러 나온다. 애잔한 선율로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두 번째 곡은 `You raise me up`이 나올 것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 마을 모습이 한적하다. 그러나 나는 쓸쓸하다고 느낀다.
옆 집 굴뚝에서는 연신 흰 연기가 올라온다. 아마도 아궁이에서는 굵은 생나무가 타고 있는가 보다.
그 집에 들러보고 싶지만 몇 달전 기억이 떠올라 발목을 잡는다.
잊어 버리자, 잊어 버리자 해도 그럴수록 마음 속은 흙탕물이 된다.

마을 가운데에 있지만 내 집은 외톨이 같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러할지 모른다.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결국 하나의 섬이다. 쓸쓸하고 외로운 섬이다.

절해고도의 이 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는 나의 몫이다.
그러나 삶의 진상이 그러하다면 회피할 생각은 없다.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아편 주사를 맞지는 않으리라.

모든 것은 변하고 흘러간다.
시공간의 한 점에서 우리는 잠시 머물렀다 가는 존재이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으리라.

옛날 외할머니와 같이 살 때 외할머니는 가끔씩 서글프다는 말을 하셨다.
따스한 봄볕을 바라보면서, 또는 추운 겨울날 새벽밥을 지으시고 들어오셔서 `사는게 서글프다`고 혼잣말을 하셨다. 그 말을듣는 내 마음도 슬펐다.
그때 외할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무엇이 인생을 서글프다고 느끼게 했을까? 어린 내가 알지 못하는 인생의 허무함과 스산함이 분명 있으셨을 것이다.

한 해의 끝이 되어서인지 자꾸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도도히 흐르는 시간의 강물, 그 물살이 숨가쁘다.

나는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잃지 않으려 조바심치고 있는가?

마음이 결코 편안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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