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일희일비 않기

샌. 2003. 12. 9. 15:02
`살아보니까 내 인생에 즐거운 날은 몇 날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날들은 그 즐거운 하루를 즐긴데 대한 빚을 갚는 날이었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본 구절인데 무척 공감이 되었다.
다만 즐거운 날이 몇 날 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살면서 우리가 겪는 사건들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궂은 일도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짧은 인생이지만 우리는 많은 굴곡을 경험한다.
행복과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원하지만 결코 삶은 뜻대로 되어 주지 않는다.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나타나고 평탄한 길이 지나면 가시덤불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떨 때는 늪을 통과해야 한다. 거기에는 맹수가 살고 있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인생은 이렇게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상반되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동전의 한 면만 소유할 수 없듯이 즐거움을 원한다는 것은 곧 괴로움도 함께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즐거움 속에는 괴로움이 내포되어 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듯이 즐거움이 클수록 찾아올 괴로움 또한 클 것이다.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쌓인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일은 나쁜 일을 수반하고 나쁜 일 뒤에는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무엇 하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옛말에도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을 꼭 보속(補贖) 때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해도 인생의 일반 원리로 삼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시소 타기와 비슷하다. 올라감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감이 있다. 내가 올라가면 상대방이 내려간다.
이런 변화는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온 생명계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나의 고통이 나 혼자만의 고통은 아니다. 그것은 전 생명계와 연관되어 있는 신비이다.

그러나 즐거움이나 괴로움은 인간의 지각 작용에 의해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원래 즐거움이나 괴로움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과 접촉하며 우리는 苦樂이나 幸, 不幸의 감정을 갖는다. 대상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오고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마음의 평안은 즐거움이나 행복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는데 있을 것이다.
괴로움이나 불행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라면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감정의 진폭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불교에서는 우리 마음에 부는 바람을 `八風`으로 표현한다고 들었다. 그것은 얻음과 잃음,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고통이라는 여덟 가지 바람이다.
얻음과 명예와 칭찬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게 한 편으로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이다.
득과 실이 같다는 걸 안다면 얻었다고 크게 기뻐하지 않을 것이고, 잃었다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부는 바람을 잠재우는 방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금은 초연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는 만상(萬象)들에 꼭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지난 주말에 터에 다녀오며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다.

지금의 괴로움은 지난 즐거움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며, 또한 미래의 즐거움에 대한 저축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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