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쓸쓸한 그곳

샌. 2003. 11. 17. 10:51
터에 다녀오다.
늦가을이어선지 더욱 쓸쓸했다.
월동 준비를 한답시고 펌프에도 헌 옷가지를 둘러씌우고 바깥 수도꼭지도 물을 뺀 다음 폐쇄시켰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었다. 다만 담안 사람들과 잠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도시의 소외가 싫었는데 지금까지는 시골 마을에서도 아직 이방인이다. 적응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지난 사건의 여파가 나에게는 아직 크다.

첫 눈에 정이 들기는 쉽다.
그러나 한 번 소원해진 뒤에 다시 정을 붙이기는 어렵다. 이건 사람이나 물건이나 땅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깊은 정이란 것은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상대의 결점이나 단점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그러고도 느끼는 동질감이야말로 세월이 쌓인 깊은 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는 과정에는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무슨 일이든 거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그만큼 시간과 눈물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간이 행동하는 동기는 자기 이익의 추구임을 다시 느낀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더라도 결국은 自利에 부합하느냐, 아니냐가 가치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유전자에서 출발해 진화해 온 모든 생물의 특징이자 한계일 것이다. 이기적이 되지 못한다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종이나 개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익 추구와 이익 추구가 충돌하는 곳에서 갈등이 생긴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국가와 국가간의 갈등이나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이기적 경향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생물 자체의 존재 양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슨 일이나 그렇듯 지나침이 문제다. 지나침은 생물 중에서 유독 인간만이 문제가 된다. 다른 생물들은 본능적으로 공존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행태는 자연이 준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가을이 지고 있다.
자연은 말없이 다툼없이 그러나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이 이렇게 아름답다.
비해서내 마음자리는 한없이 빈약해 보인다. 작은 욕심에 휘둘러서 방황하고 있는 내 자신이 더없이 불쌍해 보이는 이 가을이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희일비 않기  (0) 2003.12.09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2) 2003.11.29
쓸쓸한 건배  (0) 2003.10.31
한 문이 닫기면 다른 문이 열린다  (0) 2003.10.27
우리 배추  (0) 200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