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샌. 2003. 11. 6. 09:20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베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플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이 시를 읽으면 약에 취한 듯 몽롱해 진다.
이 약은 은둔을 속삭이는 약이다.
어디 인적 끊긴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 신선의 꿈이라도 꿈꾸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시인은 왜 경상북도라 하지 않고 강원남도라고 했을까?

나도 한 때는 세상을 등지기를 소망했다.
세상으로 나오는 길 모두 지우고, 내 마음 속 욕심도 지우고 숨어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었다.
목숨 부지할 땅 몇 뙈기와 작은집 한 채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도시 생활 정리를 시작했는데....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