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이 남아 있을까
이 시영
중학 1학년
새벽밥 일찍 먹고 한 손엔 책가방
한 손엔 영어 단어장 들고
가름젱이 콩밭 사잇길로 시오리를 가로질러
읍내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면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에
함뿍 젖은 아랫도리가 모락모락 흰 김을 뿜으며 반짝이던
간혹 거기까지 잘못 따라온 콩밭 이슬 머금은
작은 청개구리가 영롱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팔짝 튀어 달아나던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을 다시 한번 걸을 수 있을까
과거는 아름답다?
하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나이 탓인가, 계절 탓인가 요즘은 옛날 생각이 자주 난다.
오늘 만난 이 시도 내 마음을 울린다.
나도 이십리 길을 걸어 읍내 중학교에 다녔다.
합승이라고 불렀던 작은 버스가 다녔지만 시골 아이들 대부분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학교 가는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철길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그렇게 강둑 길, 논밭 길, 신작로를 따라 걷다보면 읍이 나왔고 그 읍을 다 지나야 학교가 있었다.
무척 힘들었을 텐데 그런 기억은 전혀 나지 않고 까불고 장난치던 재미난 생각만 떠오른다.
차 한 대만 지나가도 흙먼지가 뽀얗게 일던 길, 플라타너스가 양 쪽으로 도열해 있던 길기만하던 그 길이 그립다.
그 때 토박토박 같이 걸었던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들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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