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장차 죽으려 하자
제자들이 후한 장례를 치르려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로 관곽을 삼고
일월로 구슬을 두르고
별들로 거울을 삼았고
만물로 제물을 삼았으니
이미 장례를 다 준비했거늘
어찌 부족하다 하며
무엇을 더하려 하느냐?"
제자가 말했다.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을 뜯어 먹을까 염려됩니다."
장자가 말했다.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어야 하거늘
이들에게서 빼앗아 저들에게 주려 하니
어찌 편벽됨이 아니겠느냐?"
莊子將死
弟子欲厚葬之
莊子曰
吾以天地爲棺槨
以日月爲連璧
星辰爲珠璣
萬物爲재送
吾葬具
豈不備邪
何以加此
弟子曰
吾恐烏鳶之食夫子也
莊子曰
在上爲烏鳶食
在下爲루蟻食
奪彼與此
何其偏也
- 列禦寇 6
생사를 초월한 장자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세상의 범부들과는 인식의 차원이 다르다. 장례식장에서 종종 상주와 친척들 간에 고인을 모시는 절차를 두고 다투는 걸 본다. 본질은 외면하면서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싸운다. 후한 장례를 치르려는 제자들에게 장자는 일갈한다. "천지가 내 관이고, 해와 달과 별이 내 장식물이다." 장자에게 죽음은 우주의 품에 안기는 것에 불과하다. 나고 드는 것은 자연 변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바라보는 두려움이 문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미망에 갇혀 있다.
여기 내용을 볼 때 장자는 풍장(風葬)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제자들은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을 뜯어먹을까 봐 걱정한다. 이에 대한 장자의 대답도 통쾌하다. "그냥 두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묻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된다.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웬 난리냐?"
죽음과 장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도가와 유가의 차이를 본다. 공자라면 장례 의식의 절차에 많이 신경을 썼을 것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도 시신을 앞에 두고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곡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노래라니, 미친놈이 따로 없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일반의 상식 세계를 초월하는 데에 장자의 매력이 있다. <장자>을 읽는 통쾌함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