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자>는 최인호 작가의 근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료에 근거하여 공자의 삶을 재구성했다. 공자의 출국과 주유천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가 오늘과 별로 다르지 않다. 2천 년 전 예수가 살았던 유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성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책이다.
책에는 공자 외에 노자와 장자, 예수 이야기도 나온다. 공자의 사상과 비교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를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차이가 그분들의 삶에서도 완연히 드러난다. 노자는 세상에 알려지자 함곡관을 통해 사라졌지만, 공자는 끝없이 세상과 권력을 찾아 들어간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다.
공자는 평생 네 번의 외유를 한다. 첫 번째는 기원전 517년(35세, 소공 25년)에 제나라에 갔다가 1년여 만에 돌아온다. 두 번째가 기원전 506년(46세)에 남궁경숙과 주나라로 떠난 여행이다.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책에서는 특별히 공자와 노자의 이 만남에 대해 한 장을 따로 할애하고 있다.
노나라를 출발한 공자는 여러 나라를 거치며 주나라 낙안까지 수만 리의 길을 간다. 공자를 만나기 위해 노자도 소를 타고 왔다고 한다. 노자를 만나게 되자 공자는 비둘기 두 마리를 선물로 바치고 묻는다. "예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시오."
사마천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나 생각의 차이만큼이나 서로 어긋나고 있다.
"그대가 우러러보는 옛 성인들은 이미 살도 썩어지고 뼈마저 삭아 없어졌겠지."
"그렇지만 말씀은 남아 있지 않습니까?"
"글쎄, 그것이 공언(空言)이란 말씀이오. 들어보게. 군자라는 작자도 때를 잘 만나면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그 위에서 건들거리는 몸이 되지만 때를 잘못 만나면 어지러운 바람에 흩날리는 산쑥 대강이 같은 떠돌이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겠지요."
"내가 아는 바로는 예를 아는 군자는 때를 잘 만나고 못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그렇다면 예란 무엇인지요?"
"이를테면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그것이 예입니까?"
"그런 건 나도 몰라. 다만 예를 묻는 그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이것뿐일세. 자, 이제 그만 가보게나."
도가의 '무위(無爲)의 도'와 유가의 '유위(有爲)의 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대화 자체가 잘 안 되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도(道)'라는 말을 쓰지만 도가의 도가 '만물 생성과 존재의 법칙'이라면, 유가의 도는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의미한다. 공자는 끝까지 예에 대해서 묻지만 노자가 현실적인 대답을 해 주기는 어렵다.
노자와 공자, 두 성인은 짧은 만남을 통해 극단적인 두 갈래 길로 나뉘게 된다. 노자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공자는 더욱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공자는 노자와 헤어진 후 노나라로 돌아왔는데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노자는 자신을 숨김으로써 이름이 나지 않도록 애를 쓴다. 그리고 결국은 <도덕경>만을 남기고 행방불명이 된다.
공자가 마지막 13년간의 주유천하를 마치고 노나라로 귀국한 게 기원전 484년(68세, 애공 11)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분은 여생을 저술과 교육 사업에 전념했다. 그리고 동양 정신의 찬란한 불빛이 되었다. 우리가 유교 문화권에서 자라고 배웠지만 공자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신격화되고 제도화된 모습이 아닌 공자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비록 2천5백 년 전의 옛사람이지만 공자가 걸어간 길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역시 신춘추전국(新春秋戰國)의 난세인 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