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뒤 가까운 담벼락 돌틈 사이
박새 부부 둥지를 틀었나 보다
3월도 중순 너머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안방에 둥지를 트는 것도 아니어서
새소리 몇 가락으로 세를 받기로 하고
새끼 깔 그동안만 전세 내주지
담벼락 앞 감나무 사이 나무 하나 더 심으려
무심코 정말 무심코 오늘
구덩이 하나 파려는데
갑자기 박새 부부 내 앞을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아차차 그동안 몇 조각 새소리 미리 받아 들었던 게 죄로구나
엉겹결에 구덩이를 포기하고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 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저 부부 정말 전세 등기라도 한 모양 당당해서
아무 말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나무란 나무 제 식탁으로
대숲 그늘은 제 주방으로
저 하늘 구름은 제 신혼이불로
내 안마당도 제 운동장으로
모두 모두 소문내고 등기해놓은 것은 아닐까
어라, 그래 그으래
이 어처구니없는 침탈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 것도 없는 빼앗겨서 즐거운
금낭화 촉 돋는 한 때
- 박새에게 세들다 / 복효근
아는 분에게서 계간지 <시향>을 받았다. 책에는 '현대시 펼쳐보기 50선'이라는 제목으로 50인의 시인들 작품이 등단순으로 나와 있다. 그중에서 하나, 이 시를 골랐다.
소유권 등기를 해 놓고는 자신의 소유라고 사람은 주장한다. 한 장의 종이쪽지를 얻기 위해서 사람은 얼마나 고군분투하는가. 시인은 박새 얘기를 하며 그런 착각을 여지없이 허문다.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도리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박새가 제일 자유롭다. 우리도 박새처럼 사는 건 불가능할까?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 것도 없는, 오히려 빼앗겨서 즐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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