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방심 / 손택수

샌. 2012. 9. 12. 08:49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 방심(放心) / 손택수

 

 

'방심'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대개 경계하는 뜻으로 쓰인다. 사전을 찾아보니 '긴장이 풀려 마음을 다잡지 않고 놓아 버림'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짐'이라는 두 번째 의미도 있다. '방심하다'라는 말은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지다' 또는 '염려하던 마음을 놓다'라는 좋은 뜻도 있음을 이 시를 통해 알았다.

 

이 시의 장면을 상상하면 참으로 유쾌하다. 양쪽으로 탁 트인 시원한 대청마루에 시인이 누워 있다. 그때 제비 한 마리 날쌔게 얼굴 위로 지나간다. 정말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통쾌하다. 이는 모든 것이 열려 있어서 가능한 상황이다. 그리고 시인은 가만히 누워 있다. 바람이, 제비가 제멋대로 흘러가는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생활은 모든 걸 꼭꼭 닫아걸고 산다. 창문도 열 수 없게 만들어야 고급 아파트다.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되어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이웃이 경계 대상 제 일호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은 많아도 마음을 나눌 진정한 친구는 별로 없다. 서로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외롭고 염려도 많다.

 

그런 점에서 시의 제목인 '방심(放心)'의 의미가 각별하다. 마음문의 빗장을 풀고, 방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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