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에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씨알의 소리> 잡지에 실렸던 함석헌 선생의 글이 모여 있다. 당시는 내가 대학생이었고, 군사독재의 철권통치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캠퍼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데모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선생에 대한 관심도 그다지 없었고, 선생의 글을 찾아 읽었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학생 운동권에서도 종교적 이미지가 강한 선생은 크게 주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선생은 온갖 탄압 속에서도 <씨알의 소리>를 꾸준히 발행하며 국민 각성 운동을 지속했다. 나름의 일관된 행보를 이어나간 것이다.
종교 집회는 열심히 찾아다녔으면서 선생의 글이나 강연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게 지금은 부끄럽다. 선생의 글을 40년이나 지나 늦게 읽어보지만,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햇수는 중요하지 않다. 70년대 선생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선생이 고민하고 아파하던 근본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치 오늘의 우리 현실을 지적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선생의 옛글을 읽고 있다.
이 시기에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셨다. 실족사로 발표되었지만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식적인 진상 규명이 되어야 또 하나의 휘어진 역사가 바로잡혀질 것이다. '아, 장준하!'라는 글에서는 장준하 선생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이때만 해도 설마 타살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난데없는 전화가 누구라는 말도 없이 걸려와 "장준하 선생 작고하신 것을 아십니까?" 하고는 딱 끊어졌습니다. 나는 골통을 얻어맞은 사람마냥 한참 멍했다가 면목동 장 선생 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동서 되는 유경환 님이 받으면서 오늘 포천 어느 산엘 올라갔는데 갑자기 저녁때에 파출소를 통해 그런 소식이 와서 부인과 아들들이 여섯 시경에 떠나 그리 달려갔다 했습니다. 택시를 몰아 면목동엘 가니 집은 텅 비고 가까운 친구 두세 분이 와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되어진 사실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믿어지지를 않아 밤새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진상을 확인해보려 했으나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날이 새고 18일 아침 일곱 시 유해를 실은 앰뷸런스가 괴물처럼 와 닿았습니다. 문을 여니 등산복을 입은 채 들것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은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귀에서는 아직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씨알 여러분, 아무리 괴로워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그럴 듯하게 말해도 속지 마십시오. 벼슬아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젠 신문도 못 믿습니다. 신문이 우리 사정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씨알 편에 섰을 때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칼을 가지고도 그들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마는, 그들은 이제 돈에 팔려 씨알을 저버렸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금(古今)에 씨알을 저버리고 강했던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들 자신밖에 없습니다. 우리끼리 부족이 있어도 서로 믿고 잘못이 있어도 큰 목적 때문에 서로 용서하고 고생을 당할 때에 서로 알아주어서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그래야 겉으로 약해도 속으로 알이 듭니다. 씨알은 속알이 들어야 씨알입니다. 정말 속알이 차도록 들면 대적에게 먹혀도 걱정이 없습니다. 속알은 죽음을 이기는 생명입니다. 대자연을 스승과 벗으로 삼는 여러분은 뱃속을 통과해 나온 거름에서 수박 참외가 나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다만 겨자씨같이 잘더라도 속알이 들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큰 고깃덩이가 되지 말고 잘더라도 알이 들어야 합니다. 사실 잘게 사는 것이 잘사는 일입니다. 큰 것을 숭배하는 이 육식동물의 세상에서 잘게 살지 않고는 속알을 야무지게 채울 수가 없습니다. 잘고 잘아서 그 살인귀들의 모진 이빨 새로 빠져나가고 영글고 영글어서 그 독한 창자의 즙 속에서도 녹지 않고 나와서 뜯어먹고 짓밟아 다 거칠어진 동산에 다시 푸른 낙원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씨알의 덕입니다. (1971/8)
이 나라의 일, 이 사회의 풍조를 보면 참 마음 아픕니다. 자주성 없이 떠드는 꼴, 먼 역사의 내다봄 없이 권력숭배에만 미치는 꼴, 그 권력을 위해 전체를 죽여가며 당파주의를 내세우는 꼴, 나와 다르면 갖은 수단을 다해 보복을 하는 꼴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골목마다 가득 차 있는 우리 어린것들을 병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벌겠다고 동물을 때려가며 길들이는 것보다도 악독 잔인한 일입니다. 세계 빙상경기에 모처럼 출전하며 기껏 하는 소리가 "북괴를 이기고 오겠습니다." 열세 살 소녀가 그랬을 때, 나는 어쩌면 요렇게도 병신을 만들었느냐 하는 생각에 분과 울음을 못 참았습니다. (1972/3)
씨알은 무슨 직업을 했든간에 그 참 뜻에 있어서는 농사꾼입니다. 공업, 상업은 정말의 생산은 못 합니다.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 참 생산을 하는 것은 농사입니다. 천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선한 사람만 아니라 악한 것도, 고운 사람이 아니라 미운 사람도 먹여 살리는 것이 씨알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늘 뜻, 곧 우리 속에 말하시는 '그이'의 뜻, 곧 양심의 소리입니다. 그 명령을 알아듣기 위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을 받기 위해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 깊이 생각함으로 안녕하십시오! (1972/11)
민중이 옳고 그른 것을 비판하는 정신이 죽어가는 것은 시대의 얼굴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겨울이 영 아니 가고 말 것 같아 보습을 갈아두기를 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날카로운 보습만이 거칠어진 땅을 갈아 뒤엎을 수 있듯이 굽힐 줄 모르는 비판정신만이 새 시대를 불러들입니다. 아직 씨 뿌릴 때 아니라 하면 방 안에 있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보습은 갈아야 합니다. 여러분 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가차없이 쓸 것 못쓸 것을 골라두십시오. 봄이 옵니다. 사정없이 역사의 가슴에 번쩍이는 보습을 푹 들이박을 때, 가지 위에서 뻐꾸기도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1973/3)
6.25 이후 오늘까지 우리 사회의 나쁜 것은 쉼이 없는 것입니다. 조용함이 점점 더 없어져가는 것입니다. 양심은 고요하고 안정하는 데서만 살아납니다. 민중은 건드리지를 말아야 마음이 착해지고 솔직하고 감수성이 있고 창조력이 왕성하게 발동하는 법입니다. 십자로 위에서 하는 기도는 억지의 거짓 기도입니다. 선전구호로 국민의 양심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속담에 장잣불과 의붓자식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 의붓자식만이리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의붓자식이 무엇입니까? 인간성의 짓밟힘을 입은 마음, 상처난 혼입니다. 권력에 시달리면 모든 민중은 의붓자식이 돼버립니다. 이것이 정치와 교육과 종교를 지도해가는 모든 지도자의 마음에 깊이 새길 점입니다. (1974/7)
나는 대통령 부인의 슬픈 장례식을 보도하는 텔레비전의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씁니다. 많은 조객 호상객이 간다지만 나는 지극히 낮고 작은 한 씨알이기에, 민초(民草)기에, 이름없는 풀답게 홀로 멀리서 잠잠히 보내드리는 것이 내게 맞는 예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 낮은 지붕 밑에서 이 글을 쓰며 그 보도를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 그림과 소리 뒤에 그림 아닌 그림 소리 아닌 소리가 있습니다. 나는 거기 시대의 얼굴을 보고 역사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늘은 매양 그 뜻을 지극히 낮고 깨진 토기 속에 담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건지는 것은 지극히 겸손한 마음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러한 겸손한 혼을 얻자는 거룩한 지혜에서 나오는 일일 것입니다. 제발 깨진 토기조각을 보지 말고 그 속에 담긴 것을 주의해 보고 듣고 씹어보시기 바랍니다. (1974/8)
공업을 하기 위해 큰소리를 내는 기계,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산천을 흔들고 인심을 마비시키는 전쟁의 아우성, 복잡한 교통, 정책의 선전 소리, 민중을 시켜 외치는 구호, 음악이랍시고 떠들어대는 소리, 관광이랍시고 미쳐돌아가게 하는 풍조, 국민의 체력을 올린다, 국위를 드러낸다 하면서 하는 스포츠, 어느 것 하나도 씨알의 속알을 빼먹기를 목적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눈에 뵈고 귀에 들리는 것에 맘을 뺏기지 말고 멀리 앞과 뒤를 보십시오. 생명은 이때껏 그러한 모든 위협 속에서도 단지 연약하기 때문에 참음으로 지킴으로 이겨왔습니다. 모든 영웅들은 바위처럼 나무통처럼 떠내려갔고, 남은 것은 오직 씨알의 물방울의 합창으로 되는 구원한 역사의 흐름뿐입니다. (1974/9)
산속으로 들어갔음 좋겠습니다. 이 시끄러운 문명에 구역질이 나 못 견디겠고 이 너무도 잘산다는 꼴에 화 나서 못살겠습니다. 그러나 매월당처럼 서서 오줌은 못 갈기더라도 소 등에 천 년 늙은 부처처럼 앉아 건들건들 한 절반 졸며 종로 명동을 지나간다면 그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습니까? 학생들은 데모를 한다지만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한번 웃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웃어서 웃어서 배꼽을 부러쥐다 못해, 허리가 끊어지고, 눈물 콧물이 한데 얽혀 눴다 일었다, 두 팔을 들어 땅을 치고 두 다리를 치켜 곤두박질을 해 거의 인사불성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974/10)
제 속에 하늘 소리를 들으려 하고 하늘 소리 속에 역사의 소리를 들으려 하는 깬 씨알 여러분, 평안하셔야 합니다. 꼬불꼬불한 속에서도 기가 죽어서는 아니되고, 죽겠다 살겠다 하는 속에서도 고요히 귀를 기울여서야 합니다. 우리 뒤에는 소리 없는 무한 씨알이 소리 없이 섰습니다. 소리가 없는 것은 소리를 들으려고 숨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죽인 숨은 폭발하고야 마는 법입니다. 다 같은 사람이지만 또 무조건 다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 의식 가졌으면 사람이지만 없으면 아닙니다. 의식 있기는 누구의 가슴속에도 다 숨어들어 있는 전체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깨어 현의식으로 나와야 힘입니다. 그리고 깸은 의식적으로 깨워야 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의식이 무엇입니까?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하는 자아의식, 우리는 서로서로 '하나'다 하는 전체의식, 사람은 긴긴 세월을 두고 자라서 된 것이요, 이 앞으로도 무한히 자랄 것이다 하는 역사의식, 내 속에는 양심이 있다 하는 도덕의식, 어떤 보람된 것을 지어내려는 문화의식, 저도 모르게 제 속에 그런 의식을 일으키게 하는 그 근본 생명의 신비는 무엇일까 찾아 마지않는 종교의식, 그런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 생각 있으면 사람이고, 없으면 아닙니다. 가능성은 있지만 노릇을 못하는 형상뿐의 사람입니다. (1974/12)
나는 음력 섣달 열이틀 볼록한 달이 천심(天心)에 밝고 땅에는 녹다 남은 엷은 눈이 그 달의 원만한 빛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다는 듯 슬픈 빛을 띠고 눈을 내리깔고 있는 밤에 이 글을 씁니다. 나도 눈을 감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 같은 여러분께 슬픔을 보냅니다. 나는 오늘 마음이 슬펐습니다. 오늘만이겠습니까? 늘 슬프지요. 혼자 입속에 "주 세상 계실 때 늘 슬퍼하셨네" 읊조려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 슬펐습니다. (1975/2)
<씨알의 소리>는 오늘의 팔락거리는 등잔입니다. 나 스스로가 직접 관계됐으므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인간적인 인사말을 떠나서 한다면 그렇습니다. 이 등잔이 꺼져서는 아니 됩니다. 모진 바람 불고 사나운 짐승 날뛰는 어두운 골짝에 초막 하나를 지켜가는 것은 결코 큰 돈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호롱불 하나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호롱불은 또 무엇으로 지켜집니까? 지어미 지아비 사이에서 그 호롱보다도 더 약하게 가물거리는 사랑의 호롱불 때문 아닙니까? 호롱불이 꺼질 때 초막은 무너져 승냥이 굴이 될 것이요, 가슴과 가슴 사이의 사랑이 식는 순간 호롱은 꺼지고 골짜기는 지옥이 돼버릴 것입니다. 씨알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로 이 시대의 호롱불에 기름을 대십시오. (19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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