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 공원에 안장되었다. 옛 산소의 축대가 무너지고 이장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유골이 38년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무성했는데 결국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로 사망하였음이 거의 밝혀졌다.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저지른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을 직접 조사한 고상만 씨가 당시의 조사 상황과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짧은 조사 기간과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상황으로 그때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의문사위원회에서는 사건에 대해 '인정'이나 '기각', '진상규명 불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맡았던 저자는 미래를 위해 이 사건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한다. '진상규명 불능'은 단지 사건의 진실을 알 지 못한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차후 다시 재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장치였다는 것이다. '인정'으로 결정하여 끝내는 건 오히려 진실을 묻어버리는 잘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이 사건은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4:3으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이 되었다.

 

책에서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건의 목격자였던 김용환에 대한 내용이다. 사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인 그는 사고에 의한 추락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술이 오락가락해 신빙성이 없다. 확인은 되고 있지 않지만 김용환의 신분에 대해서도 의심할 여지가 많다고 한다.

 

1975년 8월 17일 일요일, 장준하는 호림산악회를 따라 포천 약사봉 등산에 갔다. 약사봉 밑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 개울가 옆길로 30분을 걸어 올라간 지점에서 산악회 회원들은 점심을 먹고자 자리를 폈다. 장준하는 "산을 좀더 둘러보고 올 테니 밥을 지어놓고 있게"라고 말한 후 혼자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10여분 뒤 김용환이 나타나 장준하의 행방을 묻고는 뒤따라갔다. 그뒤부터 장준하을 본 사람은 오직 김용환밖에는 없다.

 

책에 나온 의문점과 사실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사건 후 3일간 행적이 묘연했던 목격자

 

김용환이 상가에 나타난 것은 사건 3일 뒤다. 그는 다음날 상가에 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3일 동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사건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2. 장준하는 정말 군인 두 명을 만났을까?

 

김용환의 주장에 따르면 따로 산을 올라간 장준하를 만나기 위해 계곡을 타고 따라가니 군인 두 명과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에서는 군인과 만난 위치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만약 군인을 실제로 만났다면 어쩌면 이 군인들이 장준하 선생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3. 장준하의 약사봉 산행은 사실일까?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김용환 주장대로 약사봉 정상에 올랐다가 사고 지점까지 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더구나 내려가는 길은 일반인이 가기 어려운 험한 길이었다.

 

4. 장준하는 나무를 잡은 사실이 없다?

 

김용환은 1975년 상가에서 사고 장면을 설명할 때는 장준하가 나무를 잡다가 나무가 휘면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에는 소나무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보지 못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5. 사건 직후 사라진 목격자의 미스터리

 

그날 오후 3시경, 사망한 장준하를 그가 추락했다는 벼랑에서 약 300m 가량 떨어진 물가의 넓은 바위로 옮긴 직후 김용환은 사라졌다. 그리고는 3일이 지난 8월 20일 밤에 장준하의 상가에 나타났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일까? 김용환이 진술하는대로 그는 이동파출소에 가 있지도 않았고, 포천경찰서에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 당시 근무자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6. 사라진 그가 다시 사건 현장에 나타났다?

 

당시 수사 검사가 의사를 대동하고 18일 새벽 사건 현장에 갔을 때 김용환과 만났다고 한다. 대질 조사까지 했지만 김용환은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전직 경찰, 검사 등과도 반하게 주장한다.

 

7. 장준하는 약사봉을 등반하지 않았다

 

김용환의 주장은 장준하와 함께 산에 올랐고 정상을 거쳐 하산하던 중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산 코스나 시간상으로 볼 때 도저히 불가능하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평지에서도 천천히 걸어야 했던 장준하가 이렇게 무리한 등산을 했을 리가 없다. 전문 등산인들 경우도 쉬지 않고 오직 산행만 했을 경우 최소 1시간 30분이 필요한 코스라고 말했다. 당시 검사의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김용환이 산행했다는 시간이 30분 정도에 불과하여 산행을 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길을 거쳐 사고 지점으로 갔다고 판단했다. 장준하의 산행은 처음부터 없었다.

 

8. 장준하는 정말 벼랑에서 추락했나?

 

마네킹과 돼지를 이용한 추락 실험에 의하면 장준하의 신체 손상 부위가 실제와 달랐다. 14.7m의 높이에서 추락한다면 머리 골절 외에 갈비뼈를 비롯해 다양한 부위에서 뼈가 부러지는 충격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안경, 보온병 같은 장비도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9. 유족에게 걸려온 괴전화의 정체

 

사고 당일인 1975년 8월 17일 오후 3시경에 선생의 상봉동 자택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막내아들이 받았는데 장준하가 산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는데 서울서 사람이 와야 모셔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판단기획국에서 생산한 문서에는 김용환이 전화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김용환은 강하게 부인한다.

 

10. 김용환은 중정의 사설 정보원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에는 김용환에 대한 '특수인물 존안 카드'라는 게 있었다. 김용환이 중정 사설 정보원이었다는 중정 수사관의 진술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사설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11. 법정 스님이 말하는 장준하의 거사

 

만약 박정희 정권이 장준하를 죽였다면 왜 죽였겠는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1974년 12월 말의 어느 날, 석방된 장준하를 문병하기 위해 법정 스님이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때 장준하가 베개 밑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주면서 "누구누구의 서명을 받아 나에게 가져와달라"고 스님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제2차 100만인 서명운동' 서명 용지였다. 1차 100만인 서명운동 당시에도 독재권력은 '긴급조치 1, 2호'를 발동하여 장준하를 구속시켰었다. 그러나 미국 등의 압력으로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정권으로서는 2차 서명운동은 반드시 저지시켜야만 했다. 결국 장준하는 제2차 100만인 서명운동을 알리는 성명 발표 사흘 전에 목숨을 잃었다.

 

선생이 쓴 <돌베개>를 읽었던 때의 감동이 새롭다.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여 중경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도중에 파촉령의 설원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은 이를 악물고 다짐한다. "혁명의 불길에 뜨거운 정열을 바치리라." 그리고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라는 각오였다. 중경 임시정부의 파벌 싸움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광복군에 들어가 서안에서 무장 훈련도 받는다. 김구 선생과 함께 해방 조국에 돌아왔지만 이 땅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의 삶은 계속되었다. 어떤 억압이나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사셨다. 그러나 선생이 돌아가신지 38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은 감추어져 있다. 목격자의 말대로 정말 추락사를 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에 의해 암살당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국가 기관이 의지가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관련 문서는 전부 공개되는 게 옳다. 그게 정의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다.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역사에 맡기자고 하는데, 누구 말대로 역사는 그런 문제들을 맡아주는 전당포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