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서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인생의 한 매듭에서 정리할 건 정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마침 서울을 벗어나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핑계인지 모르지만 인간관계를 칼로 무 자르듯 할 수는 없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겉과 달리 내심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사람들마저 만나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갇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부부 모임이 생겼다. 성당에 다니는 여인네들끼리 반모임을 하다 보니 서로 친해지게 되었고 남자들도 포함시키자고 해서 부부 모임으로 확대되었다. 나로서는 꺼려지는 조건만 갖추고 있어 나가지 않겠다고 여러 달을 버텼다. 그러나 끈질긴 아내의 권유를 뿌리치기 어려웠다. "당신, 세상을 그렇게 살지 마셔."라는 타박을 여러 차례 듣고보니 아내 뒤를 졸졸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 모임에 나갔지만 역시나 서먹서먹한 게 좌불안석이었다.
노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위도일손(爲道日損)'이라, 도(道)의 길은 하나씩 덜어내는 것이라 하셨거늘 어찌 된 건지 하나씩 보태지기만 한다. 현재 내가 관계하는 모임을 손꼽아보니 여덟 개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넷, 두 달에 한 번씩이 하나, 부정기 모임이 셋이다.
- 대학 동기 모임; 4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주로 산행을 한다. 처음 등산대장을 맡았던 D가 새로 회사에 취직한 뒤 바빠서 못 나오기 때문에 3년 전부터는 내가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맡은 일이 있다 보니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다.
- 트레커; 4년 전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할 때 인연을 맺었던 등산 모임이다. 회원들은 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점이 제일 좋다. 이때까지 주식이나 아파트, 돈 얘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워낙 프로들이라 오지 산행을 주로 하는데 따라가기 힘든 게 부담이 된다.
- 바둑 모임; 퇴직하면서 나가게 되었다. 은퇴 후 취미 생활로 바둑을 선택했다. 지금은 퇴직 교사들 다섯 명이 3주에 한 번꼴로 만난다. 그날은 종로에 있는 기원에서 종일 바둑만 둔다.
- 동네 부부 모임;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다. 여섯 부부가 한 달에 한 번씩 음식점에서 저녁을 같이 먹는다. 남자들은 전부 회사에 다니거나 개인 사업을 한다. 나만 백수인데다 통하는 공통 화제가 없으니 자리가 불편하다. 수양하는 자리거니 여기기로 했다.
- 초등 동기 모임; 두 달에 한 번씩 만난다. 경상도 촌구석 출신이라 서울에서 모이는 사람은 열 명 남짓 된다. 불알친구라 반갑기는 한데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시끄럽다. 이미 수십 번도 더 주고받은 옛날 추억거리가 만날 때마다 화제가 된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아예 입을 다물어야 한다.
- 전 직장 동료 모임이 세 개가 있다. 모두 부정기적으로 만난다. 잊을 만하면 연락이 와서 얼굴을 본다. 자주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게 된다는 걸 확인하는 모임이다.
교유 폭이 좁은 내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싶다. 바쁜 게 좋은 거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테니 내 기준으로 평가할 일만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관심사가 많다 보면 삶이 번거로워질 수밖에 없다. 내 경우를 보면 정기 모임은 세 개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지금에서 반을 줄여야 한다. 인생에서 뜻을 같이하는 진실한 친구 한 사람이면 되듯이 모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저 사교적인 모임은 피곤하면서 헤어진 뒤에도 공허하다.
그러나 세상을 내 입맛대로만 살 수는 없다. 비슷한 생각과 취향의 사람만 만난다면 그런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이왕 만난 인연을 야박하게 내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오라고 하는 모임이 있으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을 때가 곧 닥칠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싱싱한 두 발이 있을 때 가리지 말고 열심히 다녀야 하는 게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