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가 묻기를 "방긋 웃는 입매, 반짝이는 눈동자, 흰 바탕에 눈부신 칠이여!"란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림은 흰 바탕 위에 그리는 것이다." "예도 나중 일인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상이 나를 깨우쳐 주는구나! 인제 너하고 시를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子夏問曰 巧笑천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 八佾 6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문답 같다. 시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예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더니 돌연 시를 논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방긋 웃는 입매, 반짝이는 눈동자, 흰 바탕에 눈부신 칠이여!'란 시경(詩經)에서 미인을 묘사하는 구절이다. 그 의미를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한 마디로 표현한다. 흰 바탕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얼굴을 우선 하얗게 만든 다음에야 여러 가지 색깔로 화장을 할 수 있듯이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겠다. 자하는 곧바로 예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함으로써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다. 예는 그림과 같은 것이고, 중요한 것은 바탕으로서의 마음이다. 예는 인간 세상을 질서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 전에 각 개인의 인격이 갖추어져야 한다. 인간 됨됨이가 되지 않은 채 형식에 치우친다면 진정성이 없는 허식의 사회일 뿐이다. 바탕으로서의 본질의 중요성을 공자는 강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素)보다는 회(繪)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물질과 외모지상주의가 이만큼 위세를 떨치는 시대가 있었던가? 원점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