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얼마 전 KBS TV '아침마당'에 이근후 선생 부부가 출연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답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마침 선생이 펴낸 책이 있어 찾아 읽어 보았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는 책이다.

 

선생은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이시다.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는 분이다. 이화여대 정신과 교수로 퇴직하신 뒤에도 네팔 의료봉사, 청소년 상담, 보육원 봉사, 석불 연구, 부모와 노인 교육, 연구 활동 등을 왕성하게 하신다. 특히,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 졸업하기도 했다. 10년 전에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이나 당뇨, 고혈압, 통풍, 디스크 등 여러 가지 병도 장애가 되지 못한다.

 

선생의 장점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리운 이들에게 먼저 연락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청탁 원고도 거절하지 않고, 제자들에게는 안부 메일을 먼저 보낸다. 일과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선생의 특징이다. 내 성향과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 선생은 결혼한 네 자녀 부부와 손자 손녀까지 삼 대 열세 명이 한집에서 산다. 각 가족이 한 층씩 자리 잡은 집을 공동으로 지었다. 그 화목함의 비결은 상호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이었다. 자식과 며느리에게는 부모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고 한다. 네 자식은 주말마다 돌아가며 부모와 식사를 한다. '예띠의 집' 헌장은 이렇다.

 

첫째, 우리는 예띠의 집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립니다.

둘째, 우리는 각 가정이 고유한 가치관과 종교관을 갖고 간섭 없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서로 '같음'은 나누면서 즐기고, '다름'은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셋째, 우리는 아무리 좋은 세상도 나 없이는 없는 것, 그리고 아무리 소중한 나도 세상 없인 없다는 것을 공감합니다.

넷째, 우리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나누면서 항상 이웃과 함께 봉사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노력합니다.

다섯째,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들이 예띠의 집에서 꿈을 키우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할 것을 소원합니다.

 

선생의 삶의 모습은 존경스러운 데가 많다. 자식 넷을 키우며 과외 한 번 시켜본 적이 없고, 각각 500만 원으로 결혼시켰다고 한다. 선생 부부가 교수이고 잘 나가는 자식들이니 화려한 결혼식을 했을 법도 하건만 대학 강당과 구내식당을 이용해 결혼식을 치렀다. 선생은 자가용도 휴대폰도 없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점도 배울 만하다. 대신 부모님의 기일이 10일 상간으로 있기 때문에 부모님을 회상하는 '메모리얼 주간'으로 정해 다례와 조촐한 식사 모임을 가진다. 그때 조상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자들에게는 지난 일 년 동안 자기 집안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조상님께 알려 드리는 형식으로 고하게 한다. 가족 모두가 제삿날을 즐거운 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일 년에 네댓 번 제사를 지내는 것은 낭비이기도 하다.

 

집안의 리더로서 필요한 덕목이 혁신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규범은 과감히 버리고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 가정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혁신이다. 사회 통념이나 규범, 규칙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가족 구성원이 없도록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가족의 행복과 기쁨, 즐거움을 위한 가족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의 인품을 대하면서 사실 많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20년이 더 지나더라도 선생처럼 원숙한 경지에 이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재미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나는 나답게 살아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선생은 말한다. 그 순간순간이 쌓여 진짜 재미있는 삶을 만든다고.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므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좀 두렵더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겠다'는 다짐을 잃지 말라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훨씬 풍요로울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