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장마가 끝났다. 6월 17일에 시작해서 8월 4일에 종료되었으니 49일 동안 이어졌다. 기상 관측을 한 이래 가장 길었던 장마였다. 종전 기록은 1974년과 1980년의 45일간이었다.
장마전선이 주로 중북부에 머물러서 실제 장마를 겪은 건 중부 지방이었다. 남부는 장맛비보다 폭염에 시달렸다.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서울은 7월 중에 비가 오지 않은 날이 닷새밖에 안 되는데, 부산은 반대로 비가 온 날이 엿새였다. 반쪽장마라는 말 그대로였다. 좁은 땅인데 전연 다른 여름을 경험한 것이다.
긴 장마였지만 비 피해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7월 한 달간 서울의 강수량이 703mm였다. 대체로 고루 분산되어 내렸다.
생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 장마는 여름의 휴식기다. 매일 쉬는 게 일이지만 그래도 장마 기간에는 밖에 나갈 걸 아예 포기하고 마음을 놓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 책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독서라는 요리에서 비는 맛있는 반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비 덕분에 아직까지는 더위를 모르고 지내고 있다. 이곳은 30℃가 넘은 날이 거의 없었다. 에어컨은 커녕 지금도 밤이면 창문을 닫고 자야 한다. 이제 오늘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올 터이다.
그리고 올여름의 또 다른 행복은 밖의 소음에서 벗어난 데 있다. 마음껏 창문을 열 수 있다는 게 무척 기쁘다.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전에는 까칠하게 여겼던 것도 이젠 허허 웃으며 보낸다. 똑같은 현상인데 내 마음이 달라지니 화를 내지 않게 된 것이다. 넓게 마음을 쓰면 우주를 감싸고도 남지만, 좁게 마음을 쓰면 바늘 꽂을 자리도 안 생기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일찍이 선현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말씀하신 뜻을 감히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