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샀던 첫 카메라는 모델명이 '캐논 GⅢ'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형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였는데 1970년대의 어느 해에 한 푼 두 푼 월급을 모아서 산 것이었다. 그 뒤로는 니콘의 SLR을 주로 사용했다. 마지막에 샀던 F3는 지금도 장롱속에서 잠자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필름카메라는 골동품이 되었다.
아날로그 시대에 비해 지금은 카메라 가격이 싸졌고 성능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디지털에서는 필름값과 현상비도 들지 않는다. 찍은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전 세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그러나 디지털의 편리함으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잊혀지는 건 아니다. 도리어 디지털의 경박함이 아날로그 시대를 더욱 그립게 한다. 지난봄에 미국 여행을 갔을 때 대포 달린 카메라를 들고 온 한 사람은 그냥 온종일 셔터만 눌러 댔다. 버스 안에서는 시끄럽다는 사람과 싸움이 붙기도 했다. 사진 공해란 걸 직접 경험했다. 그가 열흘간 찍은 사진이 모르긴 해도 수만 장은 되었을 것이다. 필름이었다면 생각 없는 난사는 어림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지금 콤팩트 디카와 DSLR을 같이 쓰고 있지만, 다 없애고 작은 카메라 하나만 갖고 싶을 때가 있다. 작품 사진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한 굳이 무거운 DSLR이 필요할까 싶다. 내 궁극의 카메라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필름 시대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 같은 것이다. 초점거리 35mm 정도의 단렌즈가 달린 소형의 수동 카메라다. 복잡한 기능은 필요 없고 작고 단순했으면 좋겠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이런 스타일에 맞는 게 '소니 RX1'이다. 일명 똑딱이라 부르는 콤팩트 카메라인데 풀 프레임 센서를 장착했다. 옛날 필름 사이즈와 같은 크기의 대형 센서다. 렌즈도 명품인 칼자이스 35mm다. 소형이지만 화질은 고급 DSLR에 버금가는 성능을 가진 똑딱이인 셈이다.
그런데 가격이 엄청 비싸다. 무려 3백만 원이 넘는다. 앞으로 다른 메이커에서 경쟁 제품이 나온다면 내려갈 여지는 있다. 또 다른 단점은 뷰파인더가 기본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직도 디지털에 적응이 안 되었는지 LCD 화면을 보며 셔터를 누르는 건 왠지 사진 찍는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카메라 가격이 2백만 원 이하이고 뷰파인더가 장착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구입하겠다. 좀더 기다리면 내가 바라는 물건도 등장할 것이다. 내 느낌이나 감성을 잘 표현해주는 나만의 카메라를 갖고 싶다. 그것은 고전적 형태를 한 단렌즈가 달린 소형 카메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