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몇 마지기 땅 외엔
더 바랄 것도 더 원할 것이 없고
제 땅에 서서 고향 공기를 들이마시며 흡족한 자는
행복한 사람
소 길러 우유 짜고 밭 갈아 빵을 얻고
양떼 길러 옷 만들고
나무에서 여름철엔 그늘을
겨울철엔 땔감을 얻네
날마다 조용히 근심걱정 모르고
매순간, 매일, 매년을 스쳐보내는
건강한 육신, 평온한 마음을 가진 자는
복 받은 사람
밤에는 편히 자고, 배우다 때로 쉬니
더불어, 상쾌한 여유로움
그 순박함은 고요한 명상과 더불어
더욱 흐뭇해지네
나 또한 이처럼 흔적 없이 이름 없이 살다
미련 남기지 않고 죽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구나
내 누운 곳 말해줄 비석조차 하나 없이
- 평온한 삶 / 알렉산더 포프
Happy the man whose wish and care
A few paternal acres bound,
Content to breathe his native air
In his own ground.
Whose herds with milk, whose fields with bread,
Whose flocks supply him with attire;
Whose frees in summer yield him shade,
In winter fire.
Blest who can unconcerndly find
Hours, days, and years slide soft away
In healthy of body, peace of mind,
Quiet by day.
Sound sleep by night, study and ease
Together mixt, sweet recreation,
And innocence, which most does please
With meditation.
Thus let me live, unseen, unknown;
Thus unlamented let me die;
Steal from the world, and not a stone
Tell where I lie.
- The Quiet Life / Alexander Pope
포프의 이 시는 한적(閑寂)과 무명(無名), 소박한 삶을 예찬하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양인의 정신 속에도 노장 사상과 닮은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의 견유학파로부터 근대의 에머슨과 소로우의 초월주의나 자연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무욕의 삶을 살려는 인간 정신은 동서양에 구분이 없다.
서양의 시에서 동양정신을 발견하니 더 반갑다. 이 시의 내용만 보면 동양의 어느 은자가 지었다 해도 누구나 의심 없이 믿을 것이다. 포프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이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때다. 은둔에 대한 욕구는 인종과 시대를 초월해 나타나는 인류 공통의 정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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