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크나큰 수의 / 김왕노

샌. 2011. 7. 4. 08:32

어머니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에 가면 둘째 시인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 미안하지 말라고 병들고 늙으면 요양원에 있는 것이 어머니 편하고 자식들 다 편한 일이라며 누누이 말하지만 요양원이 현대식이라 위생적이고 넓고 의료시설 잘 갖춰진 곳이지만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요양원에 면회 갔다 올 때마다 무릎이 세상 모서리에 부딪친 듯 생채기 하나 둘 늘어난다.

늙어도 어머니 욕심이 없을까? 어머니와 친한 할머니 자식이 비싸고 질 좋은 수의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날마다 자랑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죽으면 뭐 입고 자시고 알기나 아나, 그냥 구름이니 새벽이니 바람이니 햇살이니 다 크나큰 수의라고 여기며 그보다 더 큰 행복 없다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선소리처럼 앞세우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어머니가 제법 시적으로 말해 주는데 그 말 듣고 참 그렇기도 할 테지 하면서 면회 갔다 나오는 내 마음에 어떤 날보다 더 큰 생채기 하나 슬프게 자리 잡는 것이었다.

                 - 크나큰 수의 / 김왕노

부모를 요양원에 모셔둔 자식의 심정이 어떨까. 아직은 어머니가 건강하시니 그 심정 헤아리기만 할 뿐이다. 몇 해 전에 친척 형을 따라 노인 요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는 주로 치매 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영혼이 빠져 나간 듯한 멍한 노인들의 모습에서크게 충격을 받았다. 면회를 마치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형의 모습에서 사무치는 자식의 심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으로 나의 관을 삼을 것이다. 해와 달은 내 곁에 걸려 있는 찬란한 부장품이 될 것이요, 밤하늘의 별들은 내 주변에서 구슬처럼 빛날 것이다. 그리고 온 우주만물이 내 장례식 날의 문상객으로 참여할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모든 것이 이미 다 마련되어 있다.” ‘크나큰 수의’라는 시의 제목에서는 장자의 이 말이 떠올랐다. 시인의 어머니 말씀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크나큰 수의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하지만 그걸로 어머니를 놓고 오는 슬픔을 어찌 달랠 수 있으랴. 어머니 또한 속으로 오열할 것이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안심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에 자식은 더 슬프고 아프다. 생채기가 꽃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견뎌야 할 아픔이 너무 크다. 우리 모두는 자식이면서 어머니다. 그것이 연민 가득한 우리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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