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연장론 / 김나영

샌. 2011. 6. 15. 10:50

다 꺼내봤자 세치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아이 눈에 박힌 티끌 핥아내고
한 남자의 무릎 내 앞에 꿇게 만들고
마음 떠난 애인의 뒤통수에 직사포가 되어 박히던,
이렇게 탄력적인 연장이 또 있던가
어느 강의실, 이것 내두른 대가로 오 만원 받아들고 나오면서
궁한 내 삶 먹여 살리는
이 연장의 탄성에 쩝! 입맛을 다신다
맛이란 맛은 다 찍어 올리고
이것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덕분에 내 몸 거둬 먹고 살고 있다면
이처럼 믿을만한 연장도 없다
궁지에 몰릴 때 이 연장의 뿌리부터 舌舌舌 오그라들고
세상 살맛 잃을 때 이 연장 바닥이 까끌까끌해지고
병에서 회복될 때 가장 먼저 이 끝으로 신호가 오는
예민한 이 연장,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사마천은 이것 함부로 놀려서 궁형의 치욕을
한비자는 민첩하게 사용 못한 죄로 사약 받고 죽었다는데
잘못 사용하면 남이 아니라 내게 먼저
화근이 되는
가장 비싸면서 가장 싼
천년만년 녹슬지 않는
붉은 근육질의 저!

    - 연장론 / 김나영

 

유명 축구선수가 나와서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한 간 때문이야!”를 외치는 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모 제약회사의 간장약 판매가 껑충 뛰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간으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술과 과로가 원인이지 간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생활 습관은 고치지 않은 채 간 때문이야, 라고 푸념하며 약만 먹는다고 나아질 게 뭐가 있을까. 주객을 호도한 약 팔아먹는 상술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혀에도 같은 시비를 걸자는 건 아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혀 때문이야, 라고 핑계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혀만큼 부드러우면서 위험한 연장도 없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도구이지만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찌르기도 한다. 또 평생을 이놈을 놀려 밥벌이를 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작지만 대단한 녀석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혀가 아니라 마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기교가 아니라 진심이다. 그리고 혀로는 도저히 전달될 수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그 무엇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