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샌. 2011. 6. 1. 11:14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나는, 화사한 라일락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
싱싱한 웃음 몇 개를 준비해 두는 일
비가 샌 내 몸을 감쪽같이 도배하는 일
안개에서 빠져 나와 샤워하고 아, 분주해라
곰팡이 슨 그리움 한쪽도 시치미 떼며 감춰 두는 일
그가 묻더라도
내 가슴에 키운 돌미나리 몇 뿌리는 비상금처럼
숨겨두자
그가 눈치채기 전까지는
내 몸이 성냥갑이란 걸
감추고 있는 불이란 것도 절대 실토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그가 내 곁에
포근한 산 그림자처럼 쓰러져 누웠을 때
잊었던 봄!
물푸레나무 푸른 잎사귀로 퍼덕퍼덕 되살아날까?

그런데, 그런데 그가
참았던 봄을 한꺼번에 터트려 오면 어떡하지?
난.

     -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후생에 다시 산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세상을, 사랑을, 여자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느낄까? 이 봄에, 길가에 핀 작은 꽃에 흔들리는 여자의 감성은 어떤 것일까? 오늘같이 비 오는 날에 여자의 가슴은 어떻게 젖어들까? 작은 화젯거리에도 깔깔거리며 웃고,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내용 없는 수다에도 재미있어 하는 여자의 불가사의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출장에서 돌아오는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네의 속은 이렇게 간지럽고도 요염할까? 알 수 없는 그런 여자의 마음이 되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