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 이정록

샌. 2011. 5. 24. 14:22

갓 깨어난 새들과 시소 놀이해봤냐고
어린 나뭇가지들이 우쭐거리기 때문이다
잠든 새들 깨우지 않으려
이 악문 채 새벽바람 맞아본 적 있냐고
젊은것들이 어깨를 으쓱거리기 때문이다
겨울잠 자는 것들과는 술래잡기하지 말라고
굴참나무들이 몇 개월째 구시렁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애벌레들의 발가락 때문에 간지러워 죽겠는데
꽃까지 피었으니 벌 나비들의 긴 혀를 어쩌나
가을 되면 겨드랑이 찢어질 텐데 어쩌나 어쩌나
철부지들이 열매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 허튼 한숨에
다람쥐며 청설모들이 입천장 내보이며 깔깔거리기 때문이다
딱따구리한테 열 번도 더 당하곤
목젖에 새알이 걸려 휘파람이 샌다고
틀니를 뺐다 꼈다 하는 늙다리 소나무 때문이다
딱따구리는 키스를 너무 좋아해, 나이테깨나 두른
고목들이 삭정이 부러지게 장단을 놓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새와 벌레들에게 수만 번 잠자리를 내줘야만
사람의 집에 기둥으로 내려서거늘, 산 아래 폐가에
새로 들어온 인생 하나가 마루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 어깃장으로 들쳐 멘 속울음의 나이테를
제 삭정이로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걸레를 쥔 사람의 손을 새의 발가락인 줄 잘못 알고
눈빛 반짝이는 마루며 문지방의 나뭇결들
그걸 손뼉 치며 흉내 내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만나는 굴뚝연기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뒷산들이 폐광의 옆구리를
자꾸만 건들기 때문이다, 폐광 속 박쥐들이
골다공증의 뼈마디를 들쑤시며
좌충우돌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 이정록

이 시를 숲속 나무 아래에 앉아 읽었다. 이런 시는 소리를 내어 낭송해야 제 맛이 난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난다. '홀딱벗고'새도 어디선가 날아와 같이 운율을 맞춰준다. 숲의 생명 잔치에 동참하는 기쁨을 만끽한다.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를 이젠 묻지 않겠다. 뒷산 산책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