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비로소 / 고은

샌. 2011. 6. 23. 09:40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비로소 / 고은

 

짧고 쉽다. 누구나 쓸 것 같으면서도 아무나 쓸 수 없다. 인생의 한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노래다.

 

시인의 다른 시 '그 꽃'이 떠오른다. '내려갈 때 /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 잃어야 얻을 수 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만 나아갈 때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노를 놓쳤을 때 비로소 넓은 물이 보인다. 구름이 보이고 돛단배도 보인다.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이 물로 보인다. 지금 내가 젓고 있는 노는 무엇인가? 정신 없이 노를 저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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