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물었다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말했다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했다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 꽃을 꺾어들고 / 이규보
牧丹含露眞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
- 折花行 / 李奎報
즐겨보는 프로인 '개콘'에 '두근두근'이라는 코너가 있다. 좋아한다는 걸 대놓고 고백하지 못하는 두 청춘남녀의 수줍고도 풋풋한 사랑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가 인다. 은은한 60년대식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 '절화행(折花行)'에서 받는 느낌도 그렇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색시다. 농으로 받아주는 신랑과 박자가 잘 맞는다.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토라진 척하는 여자의 애교가 더 예쁘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이기에 이런 시가 나왔을 것 같다. 아마 조선 시대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은 잃은 것도 많았다. <시경>을 보면 시의 원형은 원래 이런 류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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