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의 삶 / 체 게바라

샌. 2013. 11. 14. 08:43

내 나이 15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나의 삶 / 체 게바라

 

 

공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는데, 체 게바라는 열다섯에 죽음에 대해 존재론적 고민을 했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위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나도 가끔 내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 본다. 중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거나, 치매로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다. 기계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는 꼴은 더욱 비극이다. 마지막 날까지 온전한 몸과 정신으로 살다가 자연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음이 찾아오는 과정을 기쁘게 맞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더라도 발버둥치지는 않으리라. 시에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처럼 산속 깊이 들어가 외로이 죽어가는 것도 멋진 일이다.

 

체는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싸우다가 밀림에서 최후를 맞았다. 자신의 결심대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었다. 그런 영웅적 죽음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모든 사람은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의무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잘 죽기 위해서는 지금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뒷일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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