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머니들의 과도한 자식 집착에 대해 사회학자가 분석한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제일 큰 원인은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껄끄러우니까 남는 에너지를 자식에게 쏟는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남편은 바깥 일이고, 아내는 자식이다. 핑계는 가족을 위한다지만 실은 배우자에게서 생긴 공허함을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이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집에는 냉기류가 흐르는데 자식은 행복해지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다. 아무리 가지를 치료하고 정성을 쏟아도 뿌리가 병들어 있으면 허사가 된다.
건강한 가정의 바탕에는 성숙한 개인이 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건강한 가정을 바라기 어렵다. 독립적이지 못한 의존형 인간을 만든 건 부모 책임이 크다. 심지어는 결혼시킨 자식에게까지 끝없이 보살펴주려는 넋 나간 부모도 있다. 지나친 사랑과 정은 오히려 자식을 망친다. 우리는 서양의 개인주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적당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도 괜찮다.
전 직장에 있을 때 영어 원어민 교사가 있었다. 방학 때 부모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입국하는 날 대면했을 뿐, 한국에서의 일정은 부모 따로, 자식 따로였다. 원어민 교사는 부모와 관계없이 계획했던 전국 일주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우리 정서로는 찾아온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여행할 것 같은데 의외였다. 나중에 물었더니 "부모는 부모, 나는 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 너무 끈끈하게 묶여 있다. 상대를 정신적 노예로 만들지나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데, 과연 자식이 얼마나 기쁠 수 있을까? 의식의 각성이 요구된다. 지 인생은 지가 사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해진다.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우선 지금 내가 행복해지자. 즐겁게 살자. 아이에게 쏟는 정성과 관심을 배우자에게 돌리자. 부부관계에는 소홀하면서 자식에게만 정성을 쏟는 건 본말이 전도된 짓이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게 내 아이를 위하는 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슈탈트 기도문이다.
The Gestalt Prayer
I do my thing, and you do your thing.
I am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You are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mine.
You are you, and I am I.
If by chance we can find each other, it's beautiful.
If not, it can't be helped.
나는 내 길을 가고,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갑니다.
내가 당신의 기대에 맞춰 세상을 살지 않고
당신이 내 기대에 맞춰 세상을 살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 나는 나
그러다 우연히 서로를 발견할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