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나간 지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청춘이란 시절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래도 청춘이란 말을 들으면 심장이 고동친다. 청춘의 청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지만 지금은 청춘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부득이 책을 통해서 청춘을 만날 수밖에 없다.
'청춘(靑春)'이라는 말에 끌려 고른 책이 <청춘유감>이다. '유감'은 섭섭하거나 불만이 담겨 있는 '遺憾'이 아니라 무감의 반대말로서의 '有感'이다. 지은이는 한국일보 문학 담당 기자로 재직하는 한소범 씨다. 30대 초반의 젊은이로 자신이 통과한 소녀와 청년 시절의 꿈과 좌절, 희망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일종의 성장기로 볼 수도 있다.
지은이는 소설가와 영화 제작에 도전하다가 꿈을 접고 신문 기자가 되었다. 직업인으로서의 갈등이 없을 수 없겠지만 지혜롭게 대처해 나간다. 그저 꿈을 좇기만 하는 무모함과 냉철한 현실주의의 가운데 어디쯤에서 자신을 지키며 나아가는 모습이 이뻤다. 무엇에서든 배우고 긍정하려는 겸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쳐가듯 나오는 말이지만 인생을 저글링에 비유하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취업이라는 공, 커리어라는 공, 관계라는 공 등 누구나 살면서 굴려야 하는 공들이 있다. 살다 보면 손에 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이것을 놓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함께 커진다. 잠깐만 리듬을 잃으면 흐트러지고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인생이 저글링이라는 것은 무너지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뜻과 같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에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의 부제가 '울면서 걷기, 넘어지며 자라기'다. 울면서 걸을 수 있고, 넘어지며 자랄 수 있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다. 청춘은 넘어지면 일어서고 울면서라도 걸어간다. 그런 열정과 도전이 있어서 청춘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청춘이 생물학적 나이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20세의 청년보다 70세의 인간에게 청춘이 있을 수도 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임에 동의한다.
책을 읽으며 내 청춘의 시기를 자주 떠올렸다. 타인의 청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결국 나의 청춘으로 회귀하기 위함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별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작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지만.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의 어떤 속성은 유장한 시간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결코 익숙해지질 않아서,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나는 정말 기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전히 세계는 온통 슬프고, 나는 울면서 걷고 있다. 그래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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