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 땅에는 신이 없다

샌. 2024. 9. 25. 10:27

 

오랜만에 서부극을 봤다. 'GODLESS[그 땅에는 신이 없다]'라는 미국 드라마다. 7부작이지만 러닝타임이 길어 다른 드라마라면 10회 가까이 되는 양이다.

 

무대는 19세기 후반 라벨이라는 광산 마을이다. 광산 사고로 남성 대부분이 죽어서 마을에는 여자들만 사는데, 이 여자들과 악당들의 대결을 그린 드라마다. 남성 영웅이 등장하는 전통적인 서부영화와 달리 여성이 주역으로 나오는 점이 흥미롭다.

 

무법자 프랭크을 두목으로 한 30여 명의 무리는 서부의 마을들을 약탈하며 무차별적인 살육을 벌인다. 프랭크에 반기를 든 로이 구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라벨 마을이 공격받게 되고 드라마의 마지막에 선과 악을 상징하는 대결인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무엇보다 멋진 촬영 솜씨에 있지 않나 싶다. 색다른 기술은 없어도 지루할 틈이 전혀 없는 화면이 전개된다. 다만 라벨에서의 마지막 전투 장면은 사실감이 떨어져서 아쉽다. 건물 안에 숨은 여자들에 비해 악당들은 그냥 길거이에서 완전 노출된 채 총격적을 벌인다. 아무리 여자들을 얕잡아 본들 이런 전투가 가능한가 싶다. 드라마는 결국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

 

여자들의 중심에 앨리스와 매리가 있다. 둘 다 자립적이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로 남성을 능가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힘과 불법이 판 치던 땅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여성의 잠재된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 땅은 신이 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을 듯한 악행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늦게서야 목사가 찾아와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매리는 등을 보이고 돌아서 간다. 신 따위는 필요 없다는 무언의 시위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젊었을 때는 서부영화를 좋아했다. 악당과 보안관의 선악 대결이 공식적인 구도다. 아니면 정의를 구현하는 총잡이가 악을 시원하게 소통한다.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이라 불러야 옳지만)이 등장해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너무 일방적인 잔혹사였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박수를 쳤다. 이제는 어떤 영화도 그런 식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리지는 않는다.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옛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본 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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