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중에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 김동연 경기도지사이다. 그분에 대해서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정도만큼만 알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좋아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지상으로는 그나마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보인다. 얼마 전에는 전국 시도지사 직무 수행 평가가 있었는데 김 지사가 1등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있는 자리 흩트리기>는 김 지사가 쓴 책이다. 무엇보다 제목에 끌려 읽어 보았다. 부제가 '나와 세상의 벽을 넘는 유쾌한 반란'이다.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하고 입신출세를 한 그의 삶과 생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김 지사는 상고 출신으로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니고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대목을 보면 초인적인 노력에 혀가 내둘려질 정도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미국 대학에서 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집념과 도전의 배경에는 학력 컴플렉스를 벗어나려는 강력한 심리적 동인이 있었을 것 같다. 책에서도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해 냉대를 받은 쓴 사례가 나온다.
한 인물을 평가함에는 출세를 한 뒤에 그가 지향하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에 편입하여 안락한 삶을 누리거나 심지어는 악한 사회 시스템을 고착화하는 데 일조하는 자가 많다. 그런 면에서 김 지사는 나라의 경제 정책을 다루면서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애써왔다고 인정한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비전 2030'을 작성한 책임자였다고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정치 지도자라면 우리 사회의 거대 담론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있어야 마땅하다. 먼저 현 상황을 올바르게 진단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나는 내부적으로는 심화하는 빈부격차 문제의 해결, 외부적으로는 남북 평화 체제의 구축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내팽개치는 현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진보 성향의 국민들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런 방향으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 김 지사는 합리적인 사회보상체계에 대해 설명한다. 사회보상체계는 누가 더 가져가고 누가 덜 가져가느냐의 문제다. 사회보상체계는 첫째는 사회 구성원이 하는 일이나 노력, 기여에 따른 보상이 과연 적정한가 하는 문제, 둘째는 보상의 차이가 얼마나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한다. 그에 따라 초과이윤을 누리는 철밥통 구조, 자기들만의 리그인 승자독식 구조, 끼리끼리 나눠먹는 순혈주의 구조의 타파가 선결과제로 떠오른다.
사회보상체계를 바꾸는 일은 어렵다. 사회를 움직이는 게임의 룰을 바꾸고 기존의 이해 구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의 엄청난 반발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기득권 카르텔로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을 자주 들먹이는데 법조계의 카르텔부터 깨부순다면 그 말을 인정할 수 있겠다. 김 지사는 이미지처럼 이런 변화에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그의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있는 자리 흩트리기>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첫째 아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안타까운 감정이 곳곳에 스며 있다. 신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끊임 없이 성을 허무는 자의 것이다. 김 지사에게 대권의 꿈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고난의 경험과 탁월한 식견에 과단성이 더해져 훌륭한 리더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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