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다니던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명씩 신앙의 선조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루터, 칼뱅, 웨슬리 등을 다루었는데 칼뱅에 대해서는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는 이미지가 그때 새겨졌고 오래 유지되었다. 뛰어난 개신교 이론가였던 칼뱅은 제네바를 신이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칼뱅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분명 칼뱅의 선한 의도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자료만 제공받았을 것이다. 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수긍했을 수도 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칼뱅도 마찬가지다.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칼뱅의 종교적 독단에 반대하며 관용의 정신을 설파한 카스텔리오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책이다.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며 폭군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만이 성서 해석의 절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광신도였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면 무조건 이단이고 사탄의 속임수였다. 그러니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잔인한 폭력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칼뱅이 지배하던 제네바는 엄격한 종교 계율 속에서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억압된 분위기였다. 칼뱅은 종교국과 종교경찰을 동원해서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당시 의회 기록을 보면 칼뱅이 시민을 얼마나 강압적으로 다루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시민이 세례식에서 웃음 지었다: 사흘간 감방 신세
어떤 사람이 여름철 더위에 지쳐서 설교 시간에 잠들었다: 감방
노동자들의 아침 식사에 파이를 먹었다: 사흘간 물과 빵만 먹음
바이올린 연주자가 춤곡을 연주했다: 도시에서 추방
어떤 소녀가 스케이트를 타다가 붙잡혔다: 종교국에 출두하여 경고를 받고 참회할 것
어떤 남자가 카드놀이를 했다: 카드를 목에 걸고 기둥에 묶어둘 것
두 명의 뱃사람이 싸움을 했으나 사람은 죽지 않았다: 교수형
이런 보고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제네바 감방은 죄수로 넘쳐나서 수용할 곳이 모자랐다. 의욕적으로 하나님의 도시를 만들려고 했으나 제네바는 무미건조한 잿빛의 도시로 변해갔다.
이때 세르베투스라는 스페인 출신의 괴짜가 나타났다. 그는 칼뱅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모든 사람에게 성서 해석의 자유로운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목숨을 내건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가만히 두고 볼 칼뱅이 아니었다. 세르베투스는 1533년에 화형을 당했다. 개신교 최초의 화형을 통한 종교 살인이었다.
칼뱅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누구도 세르베투스의 화형에 대해 항의할 수 없었다. 지식인은 침묵했다. 종교적 광기와 독재의 폭력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때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1515~1563)가 나서서 박해 받는 '다른 의견'을 위해 칼뱅과 단호하게 맞섰다.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라는 글을 써서 관용과 인문주의의 정신을 설파했다. 당시 인문주의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독재체제에 맞서 항변한 지식인이 카스텔리오였다. 카스텔리오는 그 시대의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념은 자유다."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신정국가에 맞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싸운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다. 제네바로 소환되어 심문당하기 전에 병으로 죽은 것은 카스텔리오에게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니었다면 그 역시 칼뱅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를 위한 인간의 열망은 어떤 독재자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역사의 물길을 되돌리려는 칼뱅의 무지막지한 시도도 짧은 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이 책 끝 부분을 옮긴다.
우리가 자유를 습관으로 여기고 더 이상 신성한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순간에 충동세계의 어둠 속에서 신비한 의지가 자라나 그것을 유린하려고 든다. 인류는 너무 오래 너무 근심 없이 자유를 누리고 나면, 언제나 힘의 도취에 대한 위험한 호기심, 전쟁에 대한 범죄적인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역사는 그 알 수 없는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해 때때로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퇴행을 마련해 놓는다. 그리고 폭풍우에 가장 튼튼한 댐과 지붕들이 무너지듯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권리의 담도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순간에 인류는 깡패집단의 유혈이 낭자한 발광으로, 양떼의 노예 같은 양순함으로 되돌아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밀물 뒤의 썰물처럼 이 물살도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모든 폭력 통치는 극히 짧은 시간에 낡아버리거나 차갑게 식어버리고, 모든 이데올로기와 그 일시적인 승리는 그 시대와 더불어 종말을 고한다. 오로지 모든 이념 중의 이념, 절대로 패하지 않는 이념인 정신적 자유의 이념만이 영원히 되살아나온다. 그것을 정신처럼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이 이념이 말을 못하게 막으면, 그것은 모든 억압이 미치지 못하는 가장 깊은 양심의 공간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자유정신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양심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는 인류와 인간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한 싸움을 떠맡아야 한다는 정신적의 의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모든 칼뱅에 맞서 어떤 카스텔리오가 다시 나타나서 폭력의 모든 폭행에 맞서 사상의 독자성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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